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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26. 2022

7월 26일 김승환의 하루

막무가내 

“에이, 이거 별거 아니잖아? 좀 해줘. 승환님이 일 잘해서 내가 부탁하는 거야.”


내 이름은 김승환이다. 회사에 들어온지는 이제 6년이 되었다. 회사에서 하는 일 중에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다 잘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상사에게 깨지고 있고 무난하게 넘어가는 하루는 별로 없다. 물론 내가 일을 못하는 것은 또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회사 때문에 힘든 것은 없었다. 힘든 것은 역시 인간관계였다. 특히 지금 내 앞에서 저런 말을 해대는 성우님이라는 사람과는 대화조차 하기 싫을 때가 많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이름은 송성우다. 직급으로는 차장급이지만 우리는 님으로 부르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송차장이라고 그를 부르는 경우는 없었다. 사실 그의 직급이 무엇인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여기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을 텐데 내 경우에는 그가 차장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일을 못했기 때문에 그가 차장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송성우 차장은 미스터 막무가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 쉽게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한다. 자신과 관련이 있는 부하직원뿐 아니라 다른 부서 사람들까지 부려먹는 경우가 많았다. 일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깐 네가 알아서 해’라는 방식으로 상대를 압박했다. 또 어찌나 성질이 급한지 일을 시키고 얼마 안 있어 ‘지금 어떻게 되고 있어?’라고 묻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의 잔소리가 싫어서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서 보여주면 ‘역시 잘할 줄 알았어. 거봐 내가 뭐랬어?’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그 모습만 봐도 화가 났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자신의 직원에게까지 일을 주는 그를 좋아하는 다른 부서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팀장급 이상들이 좋아했는데 자신을 대신해서 악역을 자처하고 일을 빠르게 진행시키는 송차장을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악역뿐만 아니라 정치질도 잘해서 상사들의 마음을 구워 삶기도 했다. 

지금 내 앞에서 이야기 중인 송차장은 오늘 나에게 일을 시켰다. 내가 잘할 것이라 생각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지금 할 일이 넘쳐서 죽기 직전인 나에게 또 일을 맡긴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일이 너무 많아서 못 할 것 같다고 해야 했지만 예전에 이런 말을 했다가 본전도 못 건진 경우가 있었기에 지금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은 바로 송차장이 시킨 일을 바로 해치우는 편이 낫다. 괜히 이 사람과 감정싸움을 할 이유는 없다. 

나는 조용히 ‘예’라고 대답하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송차장이 디렉션을 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괜히 물어보면 그는 ‘요즘 애들은 이런 거에 꼭 토를 달아요. 다 알려줘야 해’라며 정작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불만만 늘어놓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송차장의 오늘 타겟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내가 일을 하러 가자마자 다른 직원에게 이번에는 다른 부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송차장, 이번에는 타겟을 잘못 골랐다. 

김시환 대리. 그는 나와 연차는 얼마 차이가 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집에 좀 여유로운 사람이었는데 벼르고 벼르다가 이제 회사를 그만둘 준비를 마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나를 비롯해 몇몇 친한 사람들에게 먼저 퇴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었다. 그런데 그는 곱게 회사를 떠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송차장에게 할 말은 하고 퇴사를 할 계획이라고 했었다. 어차피 그는 업계를 완전히 떠나 다른 일을 할 것이라 문제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나는 그의 부와 여유가 부러웠다. 

김시환 대리는 송차장이 일을 시키자마자 큰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의 명령이 얼마나 부당한지, 얼마나 책임 없는 행동인지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회의실에 있던 다른 부서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우리 쪽을 쳐다볼 정도였다. 하지만 송차장도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왜 그러냐면서 김시환 대리를 비난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김시환 대리가 지금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말이 되냐며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을 은근히 요구했다. 

김시환 대리는 여기에 굴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송차장을 비난했다. 그리고 송차장이 술자리에서 부장이나 이사 등 다른 사람들을 욕했던 사실을 밝혔다. 상사 뒷담화는 우리끼리 어느 정도 통용되고 서로 비밀을 지켜주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지금처럼 공개적인 장소에서 밝히는 것은 우리끼리의 규칙을 어기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통쾌했다. 비록 김시환 대리의 행동이 어른으로서 잘못된 대처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나나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도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라 오히려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의 반란이 어느 정도 우리 조직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랐다. 



송차장과 김대리의 이야기는 결국 위에서 중재하면서 마무리되었다. 김대리는 징계를 피할 수 없었고 송차장은 부하 직원에게 욕을 먹은 불운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송차장이 상사들을 욕하고 다녔다는 사실은 그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은 송차장이 조용히 지내고 있을 것 같다. 


집으로 가는 길에 김대리를 만났다. 김대리는 퇴사를 하겠다고 팀장에게 말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은 팀장은 아무 말 없이 김대리의 퇴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나는 김대리에게 ‘정말 괜찮겠어요?’라고 물었고 김대리는 말없이 미소만 보였다. 그의 용기와 여유가 참으로도 부럽다. 

아무튼 미스터 막무가내는 더 막무가내인 한 사람에 의해 진압당했다. 남겨진 우리들 앞에 펼쳐질 회사 생활이 앞으로 어떨지는 모르겠다. 생각보다 이번 반란이 금세 잊힐 수도 있고 우리 회사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거대한 조직에서 일어난 해프닝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더 높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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