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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25. 2022

7월 25일 김승희의 하루

예정되지 않은 미팅

나는 예정에 없던 일이 생기면 화가 나는 타입이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약속은 정말 싫어한다. 내 계획에 없는 것들이 내가 오늘 계획한 것을 흐트러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와 약속을 잡고 싶으면 하루 전까지는 나에게 말을 해줘야 한다. 친구들에게도 신신당부했고 여자 친구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있다. 물론 정말 피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그런 상황 자체가 발생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

오늘 출근하는데 협력 업체로부터 전화가 왔다. 갑자기 오늘 미팅을 하자는 연락이었다. 그것도 당장 2시간 후에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무려 내가 그 회사로 찾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이런 똥매너가 다 있나.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하지만 “오늘은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더 화가 났다. 그 협력 회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회사였고 미팅을 요청한 이유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상황 그 자체에 열이 났다.

겨우 화를 추스르고 상사에게 전화했다. 거리 상 회사를 찍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바로 이동하겠다고 보고했다. 상사는 월요일 아침부터 욕본다며 잘하라고 나에게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반대 방향 열차를 탔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무려 1시간을 다시 가야 협력 업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든 게 그냥 다 짜증 났다.

왜 금요일에 미리 말을 하지 않았을까? 갑자기 미팅을 잡는 게 본인들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것도 월요일에! 직장인이 월요일에 바쁜 건 누구나 아는 상식 아닌가? 갑자기 월요일 아침에 위에서 미팅하라고 했나? 그리고 그렇게 급하면 자기들이 와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갑질까지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꼭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가? 전화나 메일로 해결이 안 되는 건가? 지금 이 상황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협력 업체를 가는 내내 이런 생각들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1시간 정도가 지나고 협력 업체 근처에 도착했다. 아직 미팅 시간까지는 여유로운 편이었기 때문에 나는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를 시켰다. 빨대를 가져가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그대로 커피를 들이켰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어느 정도 나아졌다.

그런데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하나 보였다. 바로 오늘 미팅을 진행할 협력 업체 정과장이었다. 정과장도 커피를 마시로 이곳으로 온 듯했다. 나는 정과장과 눈을 마주쳤다. 정과장은 나를 향해 다가오며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냐고요? 아니요? 지금 내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이 나옵니까. 정과장님


“아 예. 안녕하세요. 조금 일찍 도착해서 커피 마시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했는데 그냥 늦게 올걸 그랬다. 잘해줘서 버릇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괜히 일찍 와서 기다린 것 같다. 오히려 늦게 와야 갑작스러운 미팅에 대해 눈치를 줄 수 있었을 텐데…. 내 생각이 조금 짧았다.


“아이고 미안해요.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는데…. 커피 계산하신 거죠?”


당연하지 않냐. 정과장아. 내가 그럼 돈도 안 내고 마시고 있겠냐.


“아…. 네. 여기 커피 맛있네요.”


방금 내 목소리 너무 가식적이었던 것 같다.


“일찍 오신 것 알았으면 제가 사드렸을 텐데…. 어 혹시 괜찮으시면 지금 회사로 가서 미팅해도 될까요? 일찍 오셨는데 빨리 끝내시는 게 좋으실 것 같아서요. 하하.”


멘트의 모든 부분에 토를 달고 싶은데 그럴 힘이 없다. 하하 그냥 짜증만 난다.


“예.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가시죠.”


네 얼굴 오래 보고 싶지 않아요. 빨리 끝냅시다 우리.


나는 정과장과 함께 회사로 갔다. 미팅 내용은 정말 별거 없었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 관련해 회사에서 나온 몇 가지 우려 사항을 나에게 전달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 우려 사항은 크게 걱정할 것들이 아니었다. 나는 정과장에게 가식적으로 미소를 보이며 친절하게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내가 이야기하자 정과장은 바로 납득했다.

미팅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정과장은 나에게 새로운 요구 사항을 말해줬다. 분명 첫 미팅이나 계약 당시에는 이야기가 없던 부분이었다. 나는 이 점을 지적하며 우리 회사에서 수용하지 못할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정과장은 계약 내용을 보면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분명 정과장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당장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정과장에게 회사로 돌아가서 내부 논의한 후에 말해주겠다고 했다.


미팅은 고작 30분 만에 끝났다. 일찍 끝난 것도 그렇지만 결국 싫은 소리와 더불어 새로운 일까지 내렸다는 사실이 더 화가 났다. 방어할 수 있는 것은 방어하려고 했지만 괜히 진 기분이 들었다. 여러모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담배 한 대를 물고 협력 업체 회사 건물을 바라봤다. 그리고 괜히 담배 연기를 건물 방향으로 날려 보내봤다. 소심한 나의 항의 표시였다. 핸드폰을 꺼내 회사 업무 메신저를 확인했다. 여기저기서 나를 찾고 있었고 당장 회사에 들어가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곳곳에서 보였다. 나는 서둘러 담배를 끄고 자리를 떠나 회사가 있는 방향을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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