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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24. 2022

7월 24일 양진영의 하루

이직 상담 

나는 프로이직러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었다. 대기업에서 경력을 시작한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아주 작은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오래 있을 곳이 되지 못했고 오래 있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 조금 경력을 쌓고 더 좋은 회사로 이직했다. 누구는 자주 이직하는 것이 결코 좋지 못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기회가 있을 때 빠르게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회사를 1년, 2년 단위로 옮겼다. 그렇다고 회사 일을 허투루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진 역량과 지혜, 그리고 열정을 쏟아부어 성과를 만들어냈다. 내가 이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 나를 스카웃해서 옮긴 경우도 있었다. 내 연봉은 금세 또래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회사에서도 중책을 맡게 되었다. 친구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나의 도박이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부러워했다. 이직을 왜 자주 하냐고 묻던 친구들은 어느새 나에게 이직 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쉽게 이직하라고 권유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름 대기업에서 잘 지내고 있는 친구들이 그곳을 떠나 나처럼 고생하는 것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단순히 이직을 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으면 나는 화를 내며 그냥 지금 직장에 있으라고 말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절대 이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친한 친구인 진섭이 나에게 이직 상담을 요청했다. 나는 진섭과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섭은 내 친구 중에서는 아마 가장 빨리 취업을 한 친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에서 진섭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누구보다 더 기뻐했었다. 그만큼 진섭이 나에게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진섭은 회사를 잘 다녔다. 연봉도 또래보다 높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업무에 무척 만족했다. 진섭의 커리어 전체를 봤을 때도 지금 회사에 있는 것은 그에게 이득이었다. 

그러나 연차가 쌓일수록 진섭은 회사에 대한 회의감을 많이 토로했다. 상사와의 갈등, 고인물들의 의사결정 등이 진섭이 회사에 불만을 가진 포인트였다. 지금 회사에서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것에 많은 절망감을 가지고 있었다. 진섭의 연차를 생각하면 진섭의 현재 위치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진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이직을 하며 회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나를 굉장히 부러워했다. 


카페에서 만난 진섭은 나에게 헤드헌터가 제의를 준 곳 중에 괜찮은 곳이 있어 고려중이라고 했다. 진섭이 제안받은 곳 중 하나는 이른바 유니콘 기업이라 불리는 곳 중 하나였다. 또 하나는 대기업으로 현재  진섭의 직무에 보다 특화된 곳이었다. 그곳에 가면 진섭이 일하는 분야의 전문가들과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진섭은 나에게 각 회사의 장점과 단점을 설명하며 어디를 선택할지 나에게 물었다. 

진섭이 꽤나 진지하게 이직을 알아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 회사에 머물라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진섭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때 같았다. 물론 조금 더 냉철하게 보자면 지금 회사에 머무는 것이 진섭에게 훨씬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한다고 해서 진섭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유니콘 기업의 경우는 업계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회사 내부적으로 조금 불안한 상태였다. 다만 진섭이 보다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해도 지금 회사보다 나은 결정인 것 같지는 않았다. 진섭의 회사는 그만큼 안정적이고 진섭의 커리어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곳이었다. 

나는 진섭에게 이런 나의 생각을 전달했다. 진섭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는 있었지만 내 말에 반박하며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기도 했다. 이미 그는 결심을 확실히 한 것 같았다. 나도 더 이상 그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내 말이 정답인 것도 아니고 이건 그의 선택한 미래였기 때문이었다. 

진섭은 대화 주제를 바꿔 대기업이 아닌 다른 기업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나는 내가 회사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퀀텀 점프를 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는 진섭에게 내가 하는 말이 정답은 아니고 그저 한 가지 사례일 뿐이라는 것을 계속 강조했다. 진섭은 나에게 알겠다라면서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커리어를 발전시키려고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진섭은 언젠가 사업을 하고 싶어 했다. 그는 새로 이직하는 곳에서는 무엇을 하고 그다음에 이직할 회사에서 어떤 커리어를 쌓아 마지막으로 창업을 할지에 대한 생각을 나에게 말했다. 그의 로드맵은 너무나 희망적이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진섭의 그러한 생각을 들어줬다.


진섭과의 만남이 끝났다. 진섭은 다음에 이직하면 나에게 꼭 밥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진섭과 악수하며 그의 미래에 건투를 빌어줬다. 

진섭이 그래도 막연하게 이직을 생각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모든 것이 옳은 선택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진섭은 자신의 선택을 옳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의 미래에 앞으로도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도 내 커리어를 앞으로 더 발전시킬지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때인 것 같다. 진섭을 보니 괜히 나도 자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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