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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23. 2022

7월 23일 송지섭의 하루

대학생 시절 추억

지섭은 오늘 오랜만에 자신이 다녔던 대학교에 들렀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학교 생각이 나서 캠퍼스 안까지 둘러보게 된 것이었다. 방학 기간이고 토요일이라 학생들이 많이 있지는 않았다. 지섭은 천천히 학교를 둘러보며 옛 생각에 잠겼다. 졸업한 지 이제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대학교를 다니던 그때의 그 감정과 기억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지섭은 자신이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만큼 학교는 지섭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10여 년 전, 학교를 다니던 시절 지섭은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섭에게 학교는 또 하나의 집과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기숙사 생활을 1년 정도 하던 지섭은 그곳을 나와 학교 근처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지섭은 조금 더 편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친구들과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며 찌질하던 시절의 연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섭은 취업을 하고 나서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 학교는 지섭의 생활권 그 자체였다.

지섭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 학교에는 새로운 건물이 많이 지어졌다. 그래서 지섭은 학교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지섭이 좋아하던 학교의 매점은 어딘가로 이동했고 학교에서만 볼 수 있던 카페는 익숙한 프랜차이즈로 바뀌었다. 무너질 것 같던 건물은 리모델링을 했는지 세련되게 변경되어 있었다. 그렇게 지섭은 낯선 익숙한 공간을 돌아다니며 옛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떠나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처음 들었던 수업,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무식하게 술만 마시며 자신의 음주량을 측정했던 밤, 동아리 활동을 하고 MT를 가던 기억,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느낌, 고백에 성공했던 그때의 감정, 헤어지고 나서 벤치에 앉아 울었던 순간 등 모든 것이 지섭이 이 학교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섭은 조금 민망한 순간들도 기억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지섭은 점심을 먹기 위해 학교를 빠져나와 근처에 자주 가던 식당을 찾아봤다. 학교 주변 역시 학교 못지않게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 아예 지섭의 기억 속의 공간이 사라지기도 했고 특색 있던 가게들은 흔한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되어 있었다. 지섭은 큰 길가를 지나 예전에 자신이 살던 자취방 근처의 골목을 찾아보기로 했다.

자취방 근처의 골목은 거의 그대로였다. 지섭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보면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지만 큰 틀은 거의 그대로였다. 지섭은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익숙한 간판을 하나 발견했다. 그곳은 돌솥비빔밥을 파는 가게였다.


대학생 시절, 지섭은 여느 대학생처럼 돈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 밥 하나를 먹는 것도 많은 것을 계산해야 했다. 알바비가 들어온 날이면 조금 사치를 부렸지만 대부분은 돈이 없어 밥을 일부러 굶었다. 술을 사준다는 선배의 연락이 있으면 지섭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선배도 지섭에게 비싼 것을 사줄 수는 없었다. 그도 가난한 대학생인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자취방 근처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식당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에서 지섭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돌솥비빔밥이었다. 비빔밥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은 아니었고 다양한 음식을 파는 분식집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메뉴가 돌솥비빔밥이었다.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양도 많고 자취생들이 잘 챙겨 먹기 어려운 야채도 많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지섭은 일주일에 3번 정도는 꼭 이 식당을 찾았다. 지섭은 대부분 기본 돌솥을 시켰지만 돈이 좀 들어온 날이나 기분을 풀고 싶을 때는 500원 정도를 더 내고 치즈나 다른 토핑을 추가해서 시키곤 했다. 맛은 아주 무난하면서도 중독성이 있었다. 조금 탄 맛이 날 때도 있어 싫어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지섭의 입맛에는 맞았다. 지섭은 이 식당을 대학교 입학부터 졸업 후 자취방을 떠나기까지 계속해서 방문했다. 이제 10여 년이 지났지만 지섭은 아직도 아주 가끔 이 식당 특유의 돌솥비빔밥 맛이 생각났다.


지섭은 오랜만에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으로 보이는 얼굴들이 보였다. 지섭은 10여 년 전의 자신이 생각나서 학생들에게 밥을 사주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자리를 잡고 지섭은 메뉴판을 확인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격이 저렴했다. 지섭이 먹던 시절보다는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굉장히 적게 오른편이라 오히려 지금 물가를 생각하면 더 저렴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섭은 이렇게 해서 사장님이 남는 것이 있을까 싶었다.

지섭은 치즈가 들어간 돌솥비빔밥을 시키기로 했다. 지섭은 혹시나 사장님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까 싶어 사장님이 어디 계신지 확인하려고 했다. 이곳의 사장님이 지섭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은 학생들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단골들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였다. 지섭같은 단골에게는 반찬이라도 더 챙겨주는 타입이었다. 특히 지섭과는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할 정도로 친했다. 그래서 지섭은 사장님이 건강한 지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어디에도 사장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처음 보는 아저씨와 젊은 알바만 보였다. 지섭은 주말이라 사장님이 출근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지섭은 알바를 불러 치즈돌솥비빔밥을 시켰다.


잠시 후, 지섭이 시킨 메뉴가 나왔다. 지섭은 먹기 전 사진을 찍었다. 대학교 동창들에게 사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섭은 냄새를 맡았다. 특유의 냄새가 지섭의 코끝을 자극했다. 지섭은 이제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드는데 어딘지 모르게 양이 조금 적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채도 많이 없었다. 지섭은 아무래도 물가가 많이 올라서 그런 것이겠거니 하며 이해하고 밥을 먹었다.


하지만 밥의 맛 역시 지섭의 추억 속의 맛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무난하고 독특하며 중독성이 있는 맛이었다면 지금은 약간 부족하고 평범하며 오히려 물리는 맛이 되어있었다. 지섭은 고개를 들어 근처에서 밥을 먹고 있는 다른 학생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보며 편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지섭은 자신의 입맛이 변했거나 이제는 다른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 이런 것이 맛이 없어진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지섭은 밥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추억의 맛과는 다른 맛에 더 이상 숟가락을 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섭은 물로 입을 헹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계산을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지섭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이 바뀐 건지, 물가가 올라 레시피가 바뀐 것인지, 아니면 기억 속의 맛은 그저 추억 보정이었는지, 지섭이 더 비싼 다른 음식에 길들여져 이제 학창 시절의 음식이 맛이 없어진 것은 아닌지. 지섭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섭은 더 이상 추억을 망치기 싫어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섭은 앞으로는 대학교 시절의 추억을 굳이 다시 확인하려고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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