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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21. 2022

7월 21일 지상현의 하루

문화의 날

상현의 회사에는 얼마 전부터 문화의 날이라는 복지 문화가 생겼다. 상현의 회사는 이제 성장하고 있는 곳이라 별다른 복지라고 할 것이 없었는데 2달 전 인사팀에 새로운 팀장이 부임하면서 다양한 복지가 생기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문화의 날이었다.

문화의 날은 월 1회씩 팀마다 특정한 날을 지정해서 이름 그대로 문화 활동을 같이 하는 날이다. 올해 상반기부터 생긴 것인데 보통 영화를 보거나 전시회, 페어, 원데이 클래스 등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업무 특성상 팀 전체가 시간을 내기 어려운 부서는 각자 문화생활비를 아주 적게나마 지원해줬다. 상현의 부서는 팀 전체가 시간을 낼 수는 있어서 다양한 활동을 같이 했다. 특히 상현이 이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매달 어떤 활동을 할지 자신이 적극적으로 알아봤고 다른 팀원들은 그에 따랐다. 정확히 말하면 상현 외에는 적극적인 사람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팀장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 달의 활동은 확정되었다.

문화의 날 활동을 하고 나면 팀원들은 후기를 작성해야 했다. 팀장은 팀원들의 후기를 다시 정리해서 인사팀에 보고했다. 문화의 날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생겨났다.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이 감시하고 팀장이 정리한다는 사실이 꺼려지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상현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사실 그런 우려와는 다르게 실제로 인사팀은 올라온 보고서를 꼼꼼하게 체크하지 않았지만 인사팀 외에는 그런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오늘은 상현의 부서에서 문화의 날이 있는 날이었다. 이번에는 상현 외에 다른 팀원들도 의견을 제시했다. 베이킹 클래스, 미술 전시회, 캐릭터페어, 볼링, 와인 마시기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이제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있었던 상현은 내심 팀원들이 의견을 줘서 고마워했다. 문제는 팀장이었다. 팀장은 올라온 아이디어를 보더니 ‘더 괜찮은 것이 없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원래는 팀장은 의견이 올라오면 그중에서 바로 하나를 결정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에 안 든 것이 있는지 한참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현과 팀원들은 그런 팀장의 모습에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2시간 후, 고민을 끝낸 팀장의 결론은 올라온 의견 중에 없는 것이었다. 그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팀원들에게 제안했다. 그런 제안을 받은 팀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냥 웃으면서 “그거 좋네요”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팀장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팀원들도 있었다. 문화의 날을 하게 되면 일정이 끝나고 바로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2시간~3시간 정도 만에 끝나는 영화는 빨리 퇴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회사에는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영화를 보면 다른 활동도 병행하라고 권유했지만 이를 듣는 팀은 거의 없었다. 다만 매번 영화를 보는 것은 눈치가 보였기 때문에 아직까지 문화의 날마다 영화를 보는 팀은 없었다.

상현의 팀은 첫 번째 문화의 날 때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영화를 보게 된다면 회사에서 문화의 날을 도입한 이래 2번 영화를 본 최초의 팀이 된다. 상현은 영화를 또 봐도 되냐고 팀장에게 물었지만 팀장은 ‘안 될 이유가 뭐 있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다들 오늘은 바쁜 거 없잖아? 회사 근처에서 영화 빨리 보고 적당히 퇴근합시다. 내가 커버 쳐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팀장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현하자 팀원들은 이에 환호했다. 내심 일찍 집에 가고 싶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상현의 팀은 오후 시간대에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관은 회사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상현의 팀은 오후 2시쯤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영화는 팀장이 알아서 골랐다. 현재 흥행 1위를 하고 있는 영화라 이미 본 팀원들이 많았지만 팀장은 ‘본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잠이나 자라’고 말했다. 상현 역시 이미 본 영화였지만 재미있게 본터라 한 번 더 보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다.


영화는 2시 40분에 시작되어 4시 10분에 끝났다. 영화를 처음 본 사람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스크린에 집중했고 한번 본 사람들은 의자에 기대 눈을 붙이기도 했다. 자기 취향이 아닌 사람들은 지루한 표정이었으며 상현은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놓쳤던 디테일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팀장은 영화가 시작하기는 것조차 보지 않고 광고 타임 때 이미 잠에 든 상태였다. 그는 아예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다.


영화가 끝난 후, 팀원들은 팀장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6시 이후인데 아직 2시간이나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팀장은 팀원들을 카페로 데려가서 커피를 하나 씩 시키게 했다. 그리고 커피는 모두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했다. 그리고 팀장은 대충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다가 헤어진 것으로 하자고 입을 맞춘 후, 팀원들을 퇴근시켰다. 또한 팀장은 나중에 출퇴근을 기록하는 앱에 퇴근 시간을 6시에 맞춰서 올리라고 팀원들에게 당부했다.


상현은 이대로 집에 가는 것이 맞나 싶어서 망설였지만 하나 둘 다른 팀원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자신도 지하철을 타러 갔다. 오늘은 팀장이 팀원들을 배려해서 명분을 만들어 일찍 퇴근을 시켜준 날이 되었다. 상현은 회사에서 다른 팀들도 이렇게 문화의 날을 사용하는 것을 알면 결국 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다른 제약 조건이 생기지는 않을까라고 걱정하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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