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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20. 2022

7월 20일 유정원의 하루

적당히 다니자

올해로 회사 생활을 한 지 10년 차가 된다. 회사 생활은 언제나 그렇듯이 화가 나는 일로 가득하다. 팀장이라는 사람은 팀보다 자신의 승진을 더 신경 쓰는 것 같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쳐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얼마 전 우리 부서로 들어온 후배 직원은 아직 미숙하여 손이 많이 간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지만 모든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는 모든 것이 서툴렀고 상사가 조금만 언성을 높이면 금세 주눅 들었다. 자신감이 없는 상태로 회사를 다녔고 매일 아침이 오는 것이 괴로웠다. 나는 왜 일을 못하는 것일까에 대한 자괴감도 들었다. 

입사 후 1년이 지나자 나는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사람이 되었다.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하고 내가 하는 일을 인정받기 위해 어떻게든 애를 썼다. 상사들이 내 의견을 들어주면 그날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2년 차에 접어들자 회사는 익숙해졌다. 여전히 출근하기는 싫었지만 막상 출근하면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5년 차가 되자 나는 이제 제법 내 목소리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상사의 말에 반박도 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였다. 하지만 내 의견은 묵살되는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상사가 싫어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입사 7년 차 때는 회사에서 많이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 슬슬 꼰대가 되기 시작해서 후배 직원들의 태도를 못마땅해했다. 더 이상 상사에게 대들지 않고 그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사내 정치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입사 9년 차에 되고 나서는 서서히 모든 것이 지쳐가기 시작했다. 상사에게 화를 내도, 그들과 친해지려고 애를 써도 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회사의 구성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무려 9년이 걸린 것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의미가 없었다. 



이제 10년 차. 나는 회사를 그냥 다니고 있다. 여전히 상사에게 잘하려고 노력하고 후배들에게는 모범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냥 기계적인 리액션에 불과하다. 일에 어떠한 감정도 담지 않으려 하고 있고 회사와 나 사이에 노동에 대한 계약은 퇴근하면 끝일뿐이다. 퇴근 시간을 특별히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6시가 땡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미련 없이 집으로 가고 있다. 만약 야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군말 없이 의자에 더 붙어 있는다. 이렇게 사는 것이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는 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10년이 걸린 것 같다.


오늘은 후배 직원이 나에게 털어놓을 고민이 있다며 술을 한잔 하자고 했다. 예전 같으면 좋아서 술자리를 1차, 2차까지 갔을 테지만 이젠 그럴 힘도 의지도 없다. 살짝 귀찮기는 하지만 후배의 고민이 꽤나 많은 것 같아 회사 근처에 적당히 시끄러운 식당으로 이동했다. 


후배의 고민은 간단했다. 그는 굉장히 열정적이고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보고서도 만들었다. 필요하면 야근도 망설이지 않았다. 딱 내가 사회초년생일 때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역시 나처럼 좌절감을 맛보고 있었다. 팀장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묵살하기 일수였으며 그 때문에 자신이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민을 대충 들어보니 회사에 너무 기대를 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서 생기는 것 같았다. 나는 솔직하게 내 회사 생활을 후배에게 들려주면서 모든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후배는 내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도 그를 설득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냥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이고 후배에게 나처럼 살라고 하기엔 그는 너무 젊었다. 그리고 각자의 생활 방식이라는 것이 있기에 지금 내가 하는 말은 그에게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후배의 고민을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한 채 우리는 술자리를 파했다. 후배는 더욱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하며 집으로 향했다. 서로가 타는 지하철의 방향이 달랐기에 나는 후배에게 인사하고 내가 탈 지하철 방향으로 이동했다. 


회사를 어떻게 다녀야겠다는 마음이 연차별로 계속 바뀌고 있으므로 정답은 아니겠지만 지금 나는 회사에서 적당히 지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열정적으로 무슨 의견을 제시한다고 해서 남들이 알아주는 것은 아니고 내가 다른 사람들이 귀찮아하는 일을 깔끔하게 해냈을 때 더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 감정을 담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사소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서 꿍해 있으면 일에 열정적이지 않은 직원이 되기 때문이다. 엄청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그냥 깔끔하고 빠르게 처리하기만 하면 된다. 

사내 정치라는 것도 별 것 없다. 임원이 될 것이 아니면 라인을 탈 필요도 없으며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임원을 달 수가 없다. 어차피 한정된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우리의 능력이 어정쩡하다면 그런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는 없다. 적당히 상사 비위 맞춰주고 후배들한테 좋은 사람도 되었다가 쓴소리도 하는 사람이 되면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될 경우는 거의 없다. 쓸데없는 험담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거 정말 의미 없고 혹여나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면 좋게 끝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갈등의 중심에 설 필요는 없다. 

이렇게 그냥저냥 다니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그래서 오히려 요새는 회사를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회사에서 평생 살 것도 아닌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할 이유가 있나? 그냥 나는 적당히 회사를 다닐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내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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