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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18. 2022

7월 18일 송명훈의 하루

인수인계

회사를 다니면서 퇴사한 사람은 많이 보기는 했지만 그중에서 최악의 유형은 깔끔하게 떠나지 못하는 경우였다. 

얼마 전, 회사를 7개월 동안 다녔던 성민이라는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자신이 원하는 업무를 하지 않고 다른 일만 시킨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나도 지금 회사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라서 퇴사자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 회사는 뽑은 직군과 전혀 다른 업무를 시키는 경향이 강했다. 스타트업은 그래야 한다, 오너십을 발휘해야 한다,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라는 다양한 이유를 말하며 그들은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일을 시켰다. 그 결과 회사를 들어가자마자 바로 눈치채고 손절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나는 그만둘 용기가 없어 회사에서 버티고 있지만 그렇게 회사를 떠날 결심을 확고히 하는 사람들이 나는 무척 부러웠다. 

하지만 같이 일했던 동료로서 성민을 평가하자면 그리 좋은 점수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는 업무적으로 실수가 많았는데 그게 의도한 것이 많았다. 내가 보기에 일부러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배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입사하자마자 회사에 대해 파악하고 그만둘 기회만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여기는 그런 사람이 많은 곳이니깐. 하지만 성민은 이런 자세로 무려 7개월 동안이나 다닌 사람이었다. 그것이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힘든 부분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동료들 역시 성민을 안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

사실 성민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서 여기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간다는 것도 부러웠다. 그러면서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인데 여기서 대충 일했다는 사실에도 화가 났다. 아무튼 그에 대한 감정은 매우 복잡했다. 

그렇게 성민이 회사를 떠나고 회사에는 새로운 직원인 효정이 들어왔다. 성민의 빈자리를 채울 사람이었다. 효정은 경력은 있지만 실질적으로 신입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효정이 안쓰럽기도 했다. 빨리 도망가라고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회사를 떠나면 결국엔 내가 괴로워지기 때문에 어떻게든 효정을 회사에서 버티게 만드는 것이 나의 임무가 되었다. 다행히도 효정은 일을 빠르게 배워나갔다. 나처럼 불만이 많은 사람도 아닌 것 같았다. 

오늘부터 효정은 본격적으로 실무에 들어가게 되었다. 효정이 하게 되는 대부분의 업무는 내가 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쉽게 가르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성민이 이전에 하던 꽤 많은 일을 가르치기 위해 그가 작성한 인수인계 자료를 봤을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원래 인수인계는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회사처럼 퇴사가 잦은 곳에서는 전임자가 없는 상태에서 후임자가 올 때가 많았다. 성민과 효정의 사례 역시 그러하였다. 그래서 나는 성민이 퇴사하기 전에 기존에 했던 업무를 모두 정리해줄 것을 요구했다. 성민이 아무리 일을 못 했어도 적어도 인수인계 자료는 잘 정리했을 것이라 믿었다. 믿었는데…. 정말 후회가 되었다.

성민의 인수인계 자료는 엉망이었다.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겠는 것이 많았고 자료의 위치도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글 자체는 굉장히 길어서 상세히 정리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볼 것이 하나도 없는 자료였다. 나는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고 효정에게 실무를 하면서 나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효정이 헤매는 부분이 있으면 내가 차라리 도와주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내가 단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못 할 일은 아니었다. 

효정은 성민이 컨택하던 업체와 연락하기 시작했다. 자료에는 업체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있었기에 이것만큼은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내 실수였다. 

업체와 전화하던 효정은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전화를 대신 받아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전화를 넘겨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상대방은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전화기를 귀에 가까이 댈 수 없을 정도였다. 다짜고짜 나에게 화를 내는 상대방이 미웠지만 그래도 나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업체와 이야기를 해보니 내가 알고 있는 내용에서 누락된 정보가 있었다. 업체는 챙기라고 했던 부분을 왜 모르고 있냐며 답답해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으면서 업무 내용을 다시 체크했다. 서류 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업체가 지금 나에게 거짓말을 할리는 없기에 나는 공손하게 사과하고 전임자가 퇴사를 해서 혼선이 있던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업체는 여전히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었지다. 나는 최대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다른 말을 하면서 업체의 화를 누그러뜨렸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업무 내용을 크로스 체크했다. 다행히도 업체가 요구한 것은 우리가 이미 진행 중인 건이었다. 성민이 자료를 너무 대충 정리해서 이런 일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또한 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내용도 누락되어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전화를 하니  상대방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었다. 나는 일단 효정에게 업체와의 전화 업무를 중단하고 서류를 더 살펴봐달라고 했다. 성민이 더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회사가 워낙 다양한 일을 시키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져도 어느 정도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스킬은 생겼다. 사실 성민이 인수인계를 엉망으로 하고 갔다고는 하지만 이런 자료조차 정리하고 가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성민에게 평소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보니 이런 것도 별로 좋게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일을 마치고 효정과 함께 퇴근했다. 나는 혹시나 효정이 우리 회사에 실망했을까 봐 최대한 회사의 좋은 점을 말해줬다. 그녀를 위한다고는 했지만 그녀가 나가면 내가 곤란해지기 때문에 더 그렇게 말했다. 따지면 내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었다. 효정은 자신은 그만두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자신이 타야 하는 지하철 방향 쪽으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효정을 바라보고 있을 때, 메신저 알림이 울렸다. 회사의 친한 직원의 메시지였다. 다른 팀의 직원이 또 그만둔다는 소리였다. 회사에는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나도 언젠가 용기 있게 회사를 떠날 날이 오겠지…. 그래도 그때는 성민처럼 인수인계를 엉망으로 하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더 성장했을 효정이나 다른 직원이 힘들지 않게, 적어도 그들에게 피해는 끼치지 않는 선에서 좋은 모습으로 사라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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