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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17. 2022

7월 17일 조주영의 하루

Summer Is for Falling in Love

주영이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알바를 시작한 것이었다. 주영이 알바를 한 것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알바는 그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같이 알바를 하는 혜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서툴렀던 주영과는 달리 혜리는 모든 것이 능숙했다. 주영보다 6개월 먼저 알바를 시작한 혜리는 주영에게 친절하게 일을 가르쳤다. 주영은 그러던 과정에서 혜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혜리는 주영과 동갑이었다. 그래서 둘은 금방 친해졌다. 서로의 가치관도 비슷했고 좋아하는 것도 상당히 많이 일치했다. 주영은 그런 혜리가 좋았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행복했고 그녀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혜리는 주영에게만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른 남자 직원들하고도 잘 지냈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 그리고 나이가 자신보다 많든 적든 간에 모두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그런 혜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주영 말고도 혜리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영은 그래도 혜리를 좋아했다. 혜리와 가까이 있으려고 했으며 같이 집에 가는 날도 많았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 못하는 주영이었지만 그는 그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주영은 혜리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기를 무척이나 바랐다. 그러나 주영은 그것이 자신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혜리는 주영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주영은 일주일에 1~2번은 혜리와 같이 집에 갈 수 있었다. 주영은 혜리와 집에 가는 길에 같이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시고 아주 가끔 영화도 보곤 했다. 주영 입장에서는 썸 이상의 관계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지만 주영은 설레발치지 않았다. 예전에 짝사랑했던 여자와의 관계에서도 그렇게 착각했다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끝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영은 혜리가 워낙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았기에 자신은 눈에 차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히 주영에게도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영이 더 가까이 혜리에게 다가가지 못 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주변 친구들은 주영에게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조언했다. 친구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관계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영은 거의 매일 보는 사이에 괜히 어설프게 다가갔다가 그나마 있는 친구로서의 관계도 잃을까 걱정했다. 친구들은 그런 주영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주영의 용기는 부족했지만 혜리는 항상 주영에게 먼저 말을 걸며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다. 특히 주영과 혜리 둘 다 음악을 좋아했는데 혜리는 주영에게 가끔 좋은 노래를 추천하곤 했다. 


“이 노래 들어봤어?”


혜리는 매주 주말이 되면 주영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걸었다. 그리고 주영에게 노래 링크를 보내서 꼭 들어보라고 했다. 그러면 주영은 혜리가 추천한 음악을 하루 종일 반복해서 들었다. 혜리의 선곡 솜씨는 꽤나 훌룡해서 주영이 듣기에도 좋은 곡이 많았다. 노래를 들으며 주영은 항상 노래 가사를 확인했다. 주영은 혹시나 노래 가사말에 혜리가 어떤 의미를 숨겨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기대했다. 그 ‘혹시나’라고 하는 마음은 주영에게 또 하나의 행복으로 다가왔다. 노래를 추천받으면 주영은 항상 혜리에게 추천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노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보냈다. 혜리는 이렇게 리액션이 좋은 사람은 처음이라며 다음에 더 좋은 노래를 추천하겠다고 주영에게 말했다. 


주영과 혜리의 관계는 몇 달째 변화가 없었다. 둘은 그저 친한 직장 동료 정도가 되어 있었다. 주영은 여전히 혜리에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고 혜리는 언제나처럼 친절하게 주영을 대하고 있었다. 알바를 하는 곳에서 몇몇의 남자가 혜리에게 용기 있게 고백했지만 혜리는 모두 거절하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주영은 더욱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주영을 답답하게 생각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주영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도 안 쓰게 되었다. 어차피 둘 사이는 이 이상이 될 수가 없다고 그들도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혜리는 평소처럼 노래를 추천했다. 혜리는 우연히 발견하게 된 노래인데 요즘 같은 때 듣기 좋은 곡이라며 주영에게 꼭 들으라고 했다. 혜리가 오늘 추천한 노래는 사라 강의 “Summer Is for Falling in Love”였다. 사라 강이라는 가수는 주영에게 생소한 사람이었다. 주영이 처음 보는 가수라고 대답하자 혜리는 사라 강이라는 가수에 대한 정보를 보내줬다. 그냥 단순히 한 줄로 어떤 가수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꽤나 자세히 정리된 말이었다. 


“사라 강이라는 가수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야. 92년 4월 23일생! 내 생일이랑 같지? ㅎㅎ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라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뮤지션이자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데. 그래서 주로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데 가끔 한국말로도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있어. 한국곡을 커버하기도 하는데 이건 나중에 들어봐. 여하튼 내가 추천한 곡은 얼마 전 우연히 발견했는데 듣자마자 니 생각이 나서 추천하는 거야!”


주영은 혜리가 보낸 말 중 ‘니가 생각나서’라는 말에 무척 설렜다. 얼굴이 붉어진 주영은 이어폰을 끼고 혜리의 추천곡을 들었다. 


주영은 노래를 듣는 내내 행복했다. 노래 자체가 여름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곡이기도 했지만 사랑을 노래하는 한 여인의 목소리가 담겨 있어 더욱 그러하였다. 자극적인 요소 하나 없이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노래였다. 


주영은 영어 가사가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가사를 찾아 번역기에 돌려봤다. 노래의 제목처럼 사랑을 노래한 곡이었다. ‘이렇게 사랑은 시작되었지. 여름은 사랑을 시작하는 계절이니까’라는 가사가 주영의 눈을 사로잡았다. 주영은 설레발을 치기는 싫었지만 노래 가사 안에 어쩌면 혜리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렇게 노래를 듣는 내내 주영의 머릿속에는 ‘어쩌면’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주영은 노래를 몇 번 반복해서 들었다. 노래 가사와 함께 주영의 머릿속은 복잡해져 갔다. 자신이 마음속에만 품어왔던 마음을 오늘은 혜리에게 조금은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주영은 1시간이 넘게 노래를 들으며 혜리에게 전화를 할지 말지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결심이 생겼다.


주영은 혜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혜리는 주영의 전화를 바로 받았다. 무슨 일이냐며 묻는 혜리의 목소리에 주영은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노래 이야기로 잠시 화제를 돌려 시간을 벌은 주영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계속해서 숨기려고 했다. 그렇게 5분 정도 통화를 하고 혜리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주영은 다급하게 혜리에게 오늘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혜리의 대답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간의 침묵 후, 혜리는 저녁 약속이 있으니 낮에 잠깐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주영은 긍정적인 혜리의 대답에 기쁘면서도 당황했다. 무엇을 할지는 정해놓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영은 잠깐 더 혜리와 대화하면서 어딜 갈지를 생각해봤다. 영화를 보는 것도 고려했지만 지금은 그냥 혜리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결국 혜리의 저녁 약속 장소 근처에서 커피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전화를 끊은 주영의 떨리는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혜리와 둘이서 만난 적은 많았지만 모두 알바가 끝난 이후였다. 이렇게 둘이서 알바가 없는 날이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주영은 내심 기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다음 기회가 없을 것이기에 걱정이 되었다. 주영은 계속해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옷을 어떻게 입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무 꾸미면 혜리가 부담스럽게 생각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평소처럼 입으면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없을 것 같았다. 결국 평소보다 살짝 더 꾸미는 정도로 타협한 주영은 머리를 손질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내내 주영은 사라 강의 노래를 들었다. 노래의 내용처럼 두 사람의 관계가 사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주영은 혜리와의 만남을 기대했다. 그리고 주영은 오늘만큼은 부정적인 생각은 최대한 집어넣고 평소와는 다른 매력을 혜리에게 후회 없이 보여줄 것이라 다짐하고 있었다. 



We could drive along an ocean reflecting the sun

우리는 태양이 비치는 바다를 따라 운전하거나 


Or make a bed of green atop a wide open scene

넓게 펼쳐진 풍경을 배경 삼아서 잔디 위에 누울 수도 있죠


Under a canvas of blue

푸른 캔버스 아래에서 


I would draw ever nearer to you to feel the dew on your skin

그대의 피부에 맺힌 이슬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가서 당신을 그릴 수 있죠


That is how it would begin

그렇게 시작될 수 있죠


For summer is for falling in love 

여름은 사랑은 시작하는 계절이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CyyZyzbQ4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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