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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15. 2022

7월 15일 은주연의 하루

부모님의 가게

주연은 모처럼 휴가를 내고 고향에 있는 부모님 가게에 들렀다. 서울로 온 이후에는 고향에 가는 것을 귀찮아하던 주연이었지만 최근에는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고 있다. 올해 말에 주연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내년부터는 남편을 따라 미국에 잠시 가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최대한 부모님과 자주 있으려고 했다.

주연의 부모님은 주연이 어렸을 때부터 식당을 했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의 종류는 다양했고 한때는 여러 지점을 거느린 프랜차이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고 지금은 주연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운영하는 고깃집 하나만 남게 되었다. 주연은 부모님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부잣집 딸처럼 자랐지만 부모님의 가게가 어렵던 시절에는 꽤나 힘든 시기를 지내야 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주연의 사춘기 때였기 때문에 주연은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사정은 나아졌고 주연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나닐 수 있게 되었다. 서울로 올라온 주연은 자취를 하며 점차 부모님에게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주연은 부모님에게 전화를 자주 하기는 했지만 자주 찾아뵙지는 않았다. 방학 때나 겨우 한 두 번 가는 정도였고 그마저도 회사를 다닌 이후에는 명절에나 겨우 찾아가는 정도가 되었다.

주연은 다른 집 자식들처럼 부모님에게 살갑게 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대학교 때는 부모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자주 찾아뵙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그것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주연은 부모님에게 다가가는 것이 점차 힘들어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뵙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는 모든 것의 면죄부가 되었다.


주연은 외동이었다. 주연의 부모님은 주연을 사랑했지만 밤늦게까지 식당을 하며 주연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식당이 잘 될 때는 주연에게 용돈을 주고 사고 싶은 것을 사주는 것으로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려울 때는 어렵기 때문에 더욱 주연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부모님은 빚을 갚기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사춘기 시절, 홀로 지내야 하는 주연이 안타까웠지만 부모로서 주연을 굶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주연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가서 자신들과는 다른 삶을 , 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주연이 서울로 가던 날, 그들은 딸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 슬펐지만 딸이 잘 된 것 같아 기뻤다.

주연이 성인이 된 이후, 부모님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 딸이 야속했지만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전화라도 오는 것에 감사했다. 주연이 서울에 있는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기뻐서 그날 하루, 가게를 무료로 운영하기도 했다. 주연은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29살의 겨울, 주연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다. 주연보다 한 살 어리지만 든든한 사람이었다. 둘은 서로 사랑을 키워갔고 이듬해 겨울, 남자는 주연에게 청혼했다. 주연이 남자의 청혼을 망설였던 것은 그가 해외 출장이 잦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연은 외국에 나가서 살 자신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부모님과 이제 완전히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주연은 남자의 청혼을 거절했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헤어지기엔 둘은 너무나 사랑했다. 남자는 아예 다른 회사로 옮길 각오까지 하며 주연을 설득했고 결국 주연은 남자와 결혼하기로 했다. 다만 남자는 이직을 바로 할 수는 없었고 계획된 해외 근무가 있어서 그것까지만 하고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는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주연은 아주 잠시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출장의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주연은 예비 사위를 데리고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에게 인사시켰다. 부모님은 주연이 든든해 보이는 사위를 데려온 것이 좋았다. 남자 역시 부모님에게 잘하려고 노력했다. 주연과는 다르게 남자는 남들에게 싹싹한 성격이었기에 남자는 금세 부모님의 마음에 들 수 있었다. 부모님은 예비 사위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결혼 때문에 잠시 미국에서 살아야 하는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31살의 여름, 주연은 부모님과 잠시 더 떨어진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 정도 부모님을 뵙는 일정을 잡았다. 결혼 준비로 굉장히 바쁜 시기였지만 주연은 부모님과 만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주연은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자며 어렸을 때 자신이 무엇이 섭섭했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부모님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어린 주연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공감해줬고 미안해했다. 주연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괜히 부모님에게 쌀쌀맞게 군 것에 대해 사과했다. 주연의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 했고 어머니는 딸을 말없이 안아줬다. 가족의 수십 년 간의 오해가 단 하루 만에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세 사람은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는 있었다.


오늘 주연은 휴가를 내고 부모님의 가게를 도왔다. 주연은 어릴 때 잠시 도운 것을 제외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님의 일을 제대로 도운 적이 없었다. 주연은 부모님이 식당을 하는 것이 싫어서 알바를 할 때도 식당 관련 일은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주연은 지금 식당일을 돕는 것이 조금은 서툴고 어색했다.

부모님의 식당은 금요일 저녁을 맞아 손님으로 가득 찼다. 주연은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의 대기표를 작성해주고 앉아서 기다릴 곳을 마련해줬다. 주연은 너무 많은 손님들로 바빴지만 이렇게 가게가 잘 되는 모습을 보니 기뻤다. 하지만 기뻐하고만 있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가게는 무척 바빴다.


밤 11시, 식당이 문을 닫는 시간이 되었다. 주연은 테이블을 닦고 그릇을 옮기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주연의 부모님은 이제 남은 일은 자신들이 정리하겠다고 했지만 주연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했다. 원래 그 일을 했어야 했던 알바생은 그 모습을 멋쩍은 듯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이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가게 바닥을 열심히 닦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주연은 부모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여기저기 고기 냄새가 가득한 가족이었지만 주연은 그런 모습까지 좋았다. 그리고 20대 시절, 부모님과 이런 시절을 함께 더 못 보낸 것이 아쉬웠다.

주연은 부모님에게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것인지 물었다. 부모님은 이 일이 자신들의 천직이라 몸을 움직이기 힘들 때까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연은 자신이 다시 한국에 오면 서울에서 살자고 했지만 부모님은 아직 생각이 없다고 했다. 주연은 멀리 떨어진 곳에 노인 둘이 살고 있는 것이 조금 걱정되었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주연은 고기 냄새도 날아갈 겸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봤다. 어릴 적 주연이 봤던 풍경과 다르지 않은 모습의 시골길이 펼쳐졌다. 주연은 이 길을 떠나 서울로, 그리고 미국으로 가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나이 든 부모님을 모시고 남편과 고깃집을 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해봤다. 단 한 번도 그런 삶을 꿈꾼 적은 없지만 오늘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연은 자신이 너무 웃겨서 피식 웃었다. 그러자 주연의 부모님은 딸에게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주연은 그냥 생각지 않은 재미를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주연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부모님의 얼굴을 잠시 보고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그렇게 그날의 하루는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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