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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Jul 19. 2022

7월 19일 홍성호의 하루

병원에서 만난 동창

회사가 새로운 곳으로 가면 직원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단골 식당들과 이별하고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아 헤매야 하며 집에서 가까워지거나 멀어진 거리를 감내해야 한다. 또한 근처에 다니던 병원이 있었다면 새로운 병원을 가야 한다. 

얼마 전 내가 다니던 회사가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요새 허리가 안 좋아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던 병원이 있었는데 회사가 이사 가는 바람에 새로운 병원을 찾아야 했다. 원래 다니던 병원 의사가 너무 친절해서 계속 다니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아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회사의 새로운 보금자리 근처에는 괜찮은 병원이 많았다. 나는 근처 병원 중 가장 평이 괜찮은 병원을 다니기로 했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병원 시설도 좋아 보이고 의사도 굉장히 젊고 신뢰가 가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 의사라는 사람 얼굴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흔해 보이는 얼굴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오늘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아침 일찍 여는 병원이라 나 같은 직장인에게는 환영받을만한 곳이었다. 새로 병원을 옮기게 되면 불편한 점 중 하나는 접수대에서 내 신상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병원은 처음이에요”라는 말로 병원과의 인연을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다. 접수대의 간호사는 내 정보를 확인하더니 어디가 불편해서 왔는지 물었다. 내가 허리가 불편해서 왔다고 하니 그녀는 엑스레이를 한번 촬영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다른 병원에서 받은 진료 기록을 보여줬다. 간호사는 슬쩍 확인하더니 원장님 진료를 받고 다시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별로 알리고 싶지는 않지만 알려야 진행이 되는 병원 입국 절차가 끝나고 나는 편하지 않은 의자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모든 것이 어색한 지금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다. 이른 아침이지만 나같이 생각한 사람이 많은지 환자로 붐비는 병원이었다. 굉장히 이른 시간인데도 정형외과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 곳을 보니 꽤나 유명한 곳인 것 같다. 이곳의 의사는 꽤나 젊은 사람이던데 이른 나이에 이렇게 성공했다고 생각하니 괜히 의사라는 직업이 부러워졌다. 

사실 이 병원에는 의사가 여러 명 있었다. 이 중에서 누구의 진료를 받게 될까 기대하며 의사들의 약력을 살폈다. 그런데 그중에서 내 눈길을 끄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김진일….


김진일이라는 이름을 보자 내 머릿속을 스친 얼굴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이 병원에 오기 전, 내가 익숙하다고 했던 의사의 얼굴이 그와 겹쳤다. 그래, 김진일…. 정말 그 김진일인 건가?


그때,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나보고 2번 진료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2번 진료실 문 앞에는 ‘김진일 선생님’이라는 명패가 붙어있었다. 간호사가 방문을 노크하고 내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진료실에는 과연 내가 아는 얼굴이 있었다. 내가 아는 그 김진일이 맞았다. 내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자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그 김진일이었다. 


나는 놀라 진일의 얼굴을 계속 쳐다봤다. 진일은 그런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 환자 분. 제 얼굴을 왜 그리 빤히 쳐다보실까요? 하하…”


진일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 허리가 조금 안 좋아서 다른 병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회사가 여기로 이사 와서 이 병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조금 횡설수설 말했다.


“네. 기록 확인했습니다. 예전에 심하게 다치셨네요. 지금은 많이 괜찮아지셨고요?”


“예. 괜찮습니다.”


“그러면 물리치료만 받으시면 될 것 같은데, 다른 불편하신 데는 없고요?”


“네. 허리 빼고는 괜찮습니다.”


“흠… 뭐 결과 보니깐 이쪽 부분 때문에 아프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 병원에 좋은 장비들이 있으니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치료 정기적으로 받으시면 금방 나을 수 있을 겁니다.”


진일은 이후에도 내 건강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니 그가 꽤나 친절한 의사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네. 그러면 환자 분. 쾌유를 바라고요. 아직 젊으시니 치료 조금만 더 받으면 금방 괜찮아지실 겁니다.”


“아… 저….”


“네?”


진료가 끝날 때쯤 나는 내 정체를 진일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환자와 의사 관계에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사를 하고 싶었다.


“00 고등학교 나오시지 않으셨나요?”


“아……. 예. 무슨… 일이시죠?”


“아 정말 실례했습니다. 저 사실 저도 00 고등학교를 나왔는데요. 선생님께서 제 동창이신 것 같아 이렇게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진일은 놀란 표정을 하며 잠시 내가 누군지 기억하려고 무척이나 애쓰고 있었다. 그는 내 가 바로 기억나지 않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맞아. 홍성호. 그래, 홍성호 맞지?”


그는 환자 차트에서 내 이름을 다시 확인하더니 그제야 모든 것이 기억난 듯이 나에게 말했다.


“어… 진일아. 오랜만이야. 너 의대 간 것은 알았는데 이렇게 이런 자리에서 만날 줄을 몰랐다”


“이야…. 반갑다. 이런 인연이 다 있네.”


진일은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야 너, 허리 잘 좀 간수해 인마. 아니 미안합니다. 잘 간수해. 우리가 치료 잘해줄게.”


“하하 고마워. 내가 자주 들릴게.. 생각해보니 병원을 자주 들린다는 말이 조금 이상하네.”


“야, 병원은 자주 오지 말아야지. 특히 우리 나이대 사람들이 정형외과 들락날락 거리는 것도 슬픈 일이야.”


“주변 동료들한테 정형외과 갈 일 있으면 여기 오라고 할게.”


“고맙다. 아… 잠시만”


진일은 나와 이야기하면서 계속 컴퓨터 화면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아 미안…. 다른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지? 나 먼저 갈게.”


나는 눈치가 보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어… 그래, 그럼 치료 잘 받고. 나중에 연락 줘. 술이나 한잔 하자.”


진일은 나에게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 잘 지내고.”


나는 문을 열며 진일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접수대 근처의 의자로 갔다.


병원에서 동창을 만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던 일이다. 물론 이제 내 동창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약할 때가 되었으니 아예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이렇게 만나니 모든 것이 신기했다. 

사실 진일과 나는 매우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같은 반에서 오다가다 인사하는 정도였다. 진일이 어울리는 그룹과 내 친구 그룹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진일과는 대화할 일도 거의 없었다. 다만 진일이 학교 반장이었기 때문에 그와 아예 말을 안 하고 다닐 일도 없었다. 진일은 같은 반 친구들에게 무척이나 다정한 사람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흔히 말해 재수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진일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얼굴도 잘 생기고 성격 좋고 공부도 잘하는 일종의 사기캐였다. 그런 녀석이 회사 근처 병원에서 일하고 있으니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나는 진일에게 진료 잘해줘서 고맙다고 문자를 보냈다. 진일의 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일이 바쁜 탓인 것 같았다. 내가 퇴근할 시간이 되어서야 진일은 와줘서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다. 진일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민폐일 것 같아 그만뒀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찾아야 하는 때라 걱정이 많았지만 병원에서 가장 익숙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진일의 말대로 병원을 자주 갈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진일이 다니는 병원을 추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진일과 술 한잔 기울이며 익숙한 옛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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