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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25. 2022

12월 25일 채시연의 하루

크리스마스 이야기

28년 전 크리스마스 아침, 시연은 일어나자마자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알록달록한 트리스 장식 옆에 곱게 포장된 박스가 있었다. 시연은 단번에 그것이 자신을 위한 선물임을 알았다. 그리고 시연은 바로 선물을 뜯었다. 시연이 가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인형이었다. 시연은 행복했다. 그리고 시연은 생각했다. 


‘올해도 산타할아버지가 오셨네. 내년에도 엄마 아빠 말 잘 들어서 꼭 선물 받아야지.’


시연은 인형을 꼭 안고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다시 잠에 들었다. 시연보다 늦게 일어난 그녀의 부모님은 트리 앞에서 곱게 잠든 딸을 사랑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1994년 12월 25일의 이야기였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 없어?”


3년이 지난 후, 학교를 다녀온 시연이 엄마에게 물었다. 그날 시연은 친구들한테 ‘아직도 산타를 믿는 거야?’라며 놀림을 받았다. 시연의 부모님은 시연에게 굳이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오히려 딸이 아직도 산타를 믿고 있는다는 것에 놀랐다. 


“응. 시연아 산타는 없어.”


시연의 엄마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고 소파에 앉아 있던 시연의 아빠가 냉정하게 말했다. 시연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럴 리가 없어!’라고 말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시연의 부모님은 그런 시연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연은 아빠가 직장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뉴스에서 나오는 IMF니 뭐니 하는 것이 있다는 것도 들었다. 시연은 그런 것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녀는 알고 싶지 않았다. 시연은 그저 그 일로 인해 부모님의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게 슬펐다. 

그해 크리스마스, 시연의 트리에는 아주 작은 상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시연은 상자를 열었다. 아주 조그만 장난감이 하나 있었다. 시연이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스타일의 장난감이었다. 시연은 이제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부모님이 사준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자신에게 필요 없는 선물이라니. 시연은 부모님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연은 울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시연의 부모님은 더 이상 딸이 귀엽지 않았다. 자신들이 이렇게 힘든데 딸은 그것도 모르고 선물 가지고 눈물이 나 흘리다니. 시연은 그날 호되게 부모님에게 혼났다. 1997년 12월 25일의 이야기였다. 


4년이 지나고 시연은 엄마와 따로 살게 되었다. 중학생이 된 시연은 더 이상 어린애로 남아있을 수 없었다. 시연은 혼자 고생하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엄마를 돕고 싶었다. 엄마는 지금은 조용히 시연이 공부만 잘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연은 공부에 몰두했다. 이제 시연의 집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되지 않았다. 산타 할아버지도 크리스마스 선물도 없었다. 2001년 12월 25일의 이야기였다. 


5년이 지나 시연은 대학생이 되었다. 자취를 해야 했던 시연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오랜만에 엄마 집으로 왔다. 시연은 엄마가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와 와인을 가져왔다. 엄마와 소소하게 크리스마 파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시연의 집에는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시연은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용돈으로 산 선물을 엄마에게 드렸다. 시연의 엄마는 갑작스러운 선물에 눈물을 흘렸다. 시연은 그런 엄마를 안아줬다. 2006년 12월 25일의 이야기였다. 


다시 5년이 지나 시연은 취업을 했다. 취업이 확정된 날, 시연은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줬다. 그리고 그해에도 시연은 크리스마스에 엄마에게 비싼 화장품을 하나 선물했다. 엄마는 그런 시연에게 백화점을 가자고 했다. 그곳에서 시연의 엄마는 딸에게 좋은 코트를 선물했다. 시연은 ‘우리 형편에 이게 괜찮냐’며 거절하려고 했지만 시연의 엄마는 꼭 받아달라고 했다. 시연은 엄마가 선물한 코트를 입으며 따뜻함을 느꼈다. 2011년 12월 25일의 이야기였다. 


시간이 지나 30살이 된 시연은 곧 결혼할 남자친구를 데리고 엄마 집으로 찾아왔다. 시연의 엄마는 예비 사위를 무척 예뻐했다. 시연과 시연의 남자친구는 엄마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시연의 엄마는 딸과 예비 사위를 위해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다. 항상 둘, 혹은 혼자 있던 집이 오랜만에 가득 찼다. 시연과 엄마, 그리고 남자친구는 서로 선물을 교환하며 따뜻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냈다. 2016년 12월 25일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오늘. 아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 시연은 남편에게 선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남편은 아주 큰 선물 박스를 조심스럽게 가져와 크리스마스 트리에 조용히 두었다. 부부는 곤히 잠든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아이의 침대 옆에는 아이가 산타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가지고 싶은 선물을 잔뜩 적고 자신이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지를 적은 글이었다. 시연은 그런 아이를 보니 어릴 때 자신이 생각났다. 좋았던 어린 시절, 힘들었던 청소년기, 다시 행복을 찾은 지금. 시연은 아이에게는 힘든 시기 없이 이런 행복이 계속되게 하고 싶었다. 시연은 잠든 아이를 안아주고 남편의 손을 잡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무척 추웠지만 따뜻한 성탄절이기도 했다. 2022년 12월 25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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