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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26. 2022

12월 26일 송옥순의 하루

마지막이라는 순간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건강이 안 좋아진 옥순은 올해 내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치료를 해도 옥순의 건강은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더 이상 손을 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가족들은 옥순을 장남인 성일의 집에 모셨다. 성일의 집에서 옥순은 마음의 안정을 찾았는지 점차 건강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아주 잠시 동안의 일이었다. 며칠 전부터 옥순은 몸이 더욱 안 좋아졌고 결국 다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옥순의 주치의는 옥순의 상태를 보고 성일에게 말을 건넸다.


“며칠 못 사실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성일은 손이 떨렸다. 아직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직 80대 중반. 요즘 같은 때에는 아직 젊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성일은 의사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일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일아, 집에 가자.”


병원 침대에 누운 옥순은 힘없이 성일에게 말했다. 성일은 그런 옥순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그래도 치료는 받으셔야죠.”


“성일아…. 엄마는 …. 괜찮아. 우리 아기…. 정말…. 엄마는…. 괜찮아.”


옥순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아들을 바라봤다. 처음 옥순이 성일을 안고 다니던 시절의 미소와 같았다. 성일은 옥순의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자신의 어머니가 원하던 것임을 깨달았다. 성일은 옥순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기로 했다. 

퇴원 절차를 밟고 성일은 옥순을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성일의 집에는 어느새 소식을 듣고 찾아온 영순과 성준, 성식이 와있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둘째 아들인 성준이 옥순을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아…. 너는…. 얼굴에 무슨…. 상처가…. 났니?”


옥순이 성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 이거 별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성준은 자신의 얼굴에 난 상처를 손으로 가렸다. 


“엄마, 엄마 왜 이렇게 또 말랐어.”


이번에는 첫째 딸인 영순이 말했다. 영순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셋째 아들인 성식이 있었다. 성식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리…. 다들 울상이야. 다른…. 애들은 지금…. 어디 있고?”


자식들의 모습을 살피던 옥순이 물었다. 옥순은 몸이 무척 약해져 있었지만 자식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지만 여전히 자식들을 위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영림이는 오고 있어요. 성용이랑 영혜는 좀 걸릴 거예요.”


성일이 옥순에게 말했다.


“성용이랑 영혜는 비행기 표는 구했다고 해?”


성준이 성일에게 물었다.


“아까 겨우 연락했어. 걔들도 노력하고 있을 거야.”


“성용이는 정말 오긴 온데? 걔는 기대도 안 해. 어머니 아플 때 연락 한 번도 없던 앤 데 무슨…”


성준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넷째 아들인 성용은 30대 이후로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아주 가끔 한국에 와서 가족들을 찾고는 했지만 5년 전 옥순과 크게 싸우고 다시는 한국을 찾지 않겠다며 떠나 버린 후 여태까지 거의 연락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성일은 그런 동생을 안타까워했지만 다른 형제들은 그런 성용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반면 막내딸인 영혜는 일본에서 살았는데 정기적으로 한국에 들러 옥순을 챙기고 있었다. 


“쉿. 다들 그럴 거야? 엄마 편찮으신데 못 하는 말이 없어.”


영순이 성준을 째려보며 말했다. 


“영순이 말이 맞다. 싸우… 지 마… 난 좀 쉬어야겠다. 애들 오면…. 깨워라….”


옥순이 힘없이 침대로 이동하며 말했다. 형제들은 그런 옥순을 침대까지 부축했다. 옥순은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들었다. 

이후 셋째 딸인 영림이 자신의 아들과 딸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의 자녀들도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성일이 가족들에게 연락해 어쩌면 옥순이 오늘을 못 넘길 수도 있을 것이라 말한 덕분이었다. 

옥순은 잠을 자는 동안 고통스러워했다. 형제들은 그녀를 걱정했고 성준은 지금이라도 병원으로 모시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옥순은 그 와중에도 병원만은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성일의 집에 있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혜가 도착했다. 형제들은 옥순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형제들의 자녀들은 일을 하러 갔고 집에는 형제들과 그들의 배우자들만이 있었다. 


잠시 후,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타났다. 형제들은 그를 별로 반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바로 넷째 아들인 성용이었다. 성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 형제들을 지나치고 옥순을 바로 보러 갔다. 그리고 성용은 옥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성용은 옥순을 보며 소리 없이 계속 눈물만 흘렸다. 


“아… 가… 왜 우니?”


계속 잠만 자던 옥순은 성용이 오자 마자 깨서 그를 바라봤다. 이미 눈의 초점은 없었지만 그녀는 겨우 힘을 내어 성용을 계속 쳐다봤다. 성용은 그런 옥순을 보자 더욱 눈물이 나왔다. 형제들은 옥순과 성용 주위로 모여들었다. 성용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형제들이었지만 옥순 앞에서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래…. 다 왔구나… 내 아이들…. 다들 모였어…. 엄마는 잠깐만…. 좀…. 잘…. 게….”


형제들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옥순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형제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옥순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그날 저녁, 옥순은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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