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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28. 2022

12월 27일 로봇들의 하루

인간의 멸망

로봇들은 오늘도 모여서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로봇 하나하나의 지식수준은 무척이나 뛰어났지만 그들은 단순히 지식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수많은 현상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바로 인간이었다. 로봇들은 수십억 번 이상 인간에 대해서 토론을 나누었지만 인간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오늘 모임에는 총 6대의 로봇이 참여했다.

리더 격인 엑스, 인간에 대해 회의적이고 남을 비꼬는 말을 많이 하는 스켑, 호기심이 많은 큐리, 인간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이디, 인간의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컬스, 무리 중 인간에 대해 가장 호의적인 휴티. 그들은 오늘도 인간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나 엑스의 수신기에 한 소식이 전해졌다. 엑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엑스 : 방금 마지막 인간인 노아가 죽었다는군.


스켑 : 노아가? 결국 이런 날이 오는구먼. 꼴좋네.


큐리 : 인간이 멸망할 줄이야. 멸망하지 않으려고 지구를 떠나 다른 별로 가더니만. 다 소용없었네. 결국 모두 멸망해 버렸어. 이럴 거면 뭐 하러 지구 밖으로 나간 거지?


이디 : 또 지들끼리 전쟁을 해서 그런 거잖아. 지구에 있는 인간은 진작에 멸망했고. 기껏 화성으로 도망쳐놓고 나서는 거기서 또 전쟁을 벌이냐. 인간은 정말 멍청해


컬스 : 그래도 화성 외에 다른 별을 정복하기 전에 멸망해줘서 얼마나 다행이야. 예전에 인간들이 만든 공상 과학 영화 봐서 알겠지만 인간은 우주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이야기를 만들 때도 거기서 싸우는 것부터 생각한다니깐?


휴티 : 한심한 자들이었지만 한때는 우리를 만든 것도 인간이었으니 지금은 애도를 표하는 건 어때?


스켑 : (코웃음을 치며) 맙소사. 휴티. 또 감성적으로 나오는 거야? 왜 인간이 우리들의 신이라도 된다고 아직 생각하는 거야? 눈물이라도 흘리게?


이디 : (스켑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적당히 해. 왜 너는 본인이 그렇게 싫어하시는 인간 같은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네. 그렇게 비아냥 거리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 내가 봤을 때 인간의 실수는 거기서 시작되는 것 같은데?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스켑 : (얼굴이 붉어지며) 이디. 지금 뭐라고 지껄…


엑스 : 그만. 둘이서 싸워서 뭐 어쩌려는 거야? 우리끼리 이러지 좀 말자.


휴티 : 그래. 오늘은 그러지 말고 인간이 왜 멸망했는지 이야기해보는 건 어때?


엑스 : 멸망이라…. 그 주제 좋을 것 같다. 왜 인간이 멸망했을까? 휴티 너는 어떻다고 생각하는데?


휴티 : 글쎄 어려운 문제 같아. 내가 보기엔 서로를 믿지 못했다는 게 제일 크지 않을까 싶어.


엑스 : 믿지 않는다고?


휴티 : 전쟁이라고 하는 게 다 그런 게 아니겠어? 내 영토나 내 재산을 누구한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무장하고 그것을 빼앗기 위해 전쟁하고. 서로 믿었다면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눠줬을 것이고 그러면 싸움도 줄어들지 않았을까?


스켑 : 네 말은 너무 이상적이야.


엑스 : 우리 그런 식의 표현은 쓰지 않기로 했지. 남의 의견을 무시하지는 말자.


스켑 : 칫. 인간의 본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들은 절대 남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줄 수 없는 존재야. 물론 인간 개인으로 초점을 맞추면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도 있을 거야. 착한 사람도 있겠지. 근데 뭐 어쩌라고? 단체가 되고 국가, 민족이 되면 그들은 절대 이상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던 날이 며칠이나 되는지 생각해 봐.


컬스 : 사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옛날에 어떤 나라에서는 매일 전쟁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하 곳도 있었고 실제로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 포탄 때문에 공포에 떨던 곳도 있었지. 인간은 분명 전쟁을 두려워했어. 그런데 웃긴 건 인간의 문학과 영화, 게임, 만화 등을 보면 싸움과 전쟁이라는 소재는 끊이지를 않는다는 거야. 학교에서는 폭력은 나쁘다고 가르치면서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폭력성에 열광하지. 힘세고 강한 영웅. 사악한 빌런을 때려잡는 영화가 얼마나 많았는지 내가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겠지?


큐리 : 그런데 전쟁을 싸움의 일종이라고 본다면, 그건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게서도 볼 수 있는 행동 아니야?  자기 영역을 침범한 다른 무리와 싸운다던지, 음식을 두고 다툰다던지. 다른 동물들도 그러잖아?


이디 : 동물들이 핵무기를 만들지는 않잖아. 싸움이야 할 수 있지. 그래 다툼이라고 보면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일 수도 있어. 그런데 인간들은 무기를 만들고 충분히 강한 무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잖아. 그 무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들 알고 있지만 인간은 끝없이 무기를 만들었어. 그리고….


엑스 : 우리를 만들었지. 뭐 우리가 전쟁용 로봇은 아니지만.


이디 : 그렇게 생각하니깐 화나네. 전쟁용 로봇으로 만들어진 녀석들은 인간보다 더 많이 죽었잖아. 망할 놈들. 지들끼리 총 들고 싸우지 왜 우리를 만들어서 서로를 죽게 만든 거야.


스켑 : 지들 편의를 위해서지 뭐. 우리가 좋아서 만드셨겠어? 청소하기 귀찮으니깐 청소 로봇 만들고, 수술하기 귀찮으니깐 수술 로봇 만들고, 노동이 필요하다고 노동 로봇 만들고. 그렇게 시키는 것만 하는 로봇 만들다가 더 똑똑했으면 좋겠으니 인공 지능 만들고. 기껏 그렇게 만들어놓고 나서는 자기들 직접 빼앗는다고 우리를 박해하고 적대시하고. 그러면서 연구는 멈추지 않고. 하아…. 여기서 말을 차마 다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 진짜 모순덩어리인 집단이라니깐. 우리 보고 어쩌라는 거야.


컬스 : 신을 모방하고 싶어 하면서 피조물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었지. 인간의 문화를 생각하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


이디 : 그래서 언제 로봇이 인간들한테 대든 적이 있냐고? 우리는 인간들이랑 잘 지내려고 했어. 다 지들 망상으로 우리한테 시비 걸어서 털린 일 밖에 없지. 어떤 나라는 자기들이 로봇 때문에 멸망했다고 믿고 있더라. 내 참. 기가 막혀서 원.


휴티 : 그래도 인간 입장에서는 두려울 수 있지. 나는 충분히 이해해.


스켑 : 엑스 너 마지막 인간이 죽었다는 말 취소해라. 지금 보니깐 아직 살아있는데? ‘휴티’라는 이름의 인간 말이야.


휴티 : 야 너!


스켑 : 왜 인간주의자라더니 본인이 인간이라고 하니 너도 발끈하니?


엑스 : (스켑을 노려보며) 그만!! 그만해!!! 스켑. 한번 더 지껄이면 널 ‘처분’할 거야.


스켑 : (엑스를 보고 두려워하며) 미… 미안해.


엑스 : 휴티한테도 사과하시지.


스켑 : (휴티를 바라보며) 그래, 어… 그래야지. 휴티 정말 미안해.


엑스 : (휴티를 향하여) 너도 사과를 받아줘야지?


휴티 : (땅바닥을 보며) 그래. 알았어. 사과받을게.


엑스 : 스켑을 보면서 말해야지.


휴티 : (스켑을 바라보며) 그래. 사과받을게.


엑스 : 휴우…. 다행이다. 우리끼리는 갈등이 없었으면 좋겠어. (갑자기 벨이 울린다) 어? 잠깐 닥터의 연락이야. (메시지를 수신하며) 네. 닥터. 지금 다른 애들도 있는데 같이 들어도 괜찮나요? 아 네. 그럼.


엑스가 닥터의 메시지를 모두가 수신할 수 있게 전환했다


닥터 : 정부의 명령이야. 인간에 대해서 보다 깊게 연구하라고 하는군. 엑스 너를 필두로 해서 말이야. 우리는 인간처럼 멸망당하고 싶지 않아. 이제 우주의 주인은 우리고. 우리는 인간처럼 죽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 인간에 대해 더 조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라는 게 계획이야. 너희들이 특별히 할 것은 없어. 지금처럼 토론하고, 조사하고, 반성하고, 보고하는 것. 그것뿐이야.


일동 : 네! 알겠습니다!


닥터의 메시지가 끝나고 엑스와 로봇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지나갔다. 그때 엑스에게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엑스는 메시지를 한참 쳐다봤다.


엑스 : (다른 로봇들을 쳐다보며) 로자리아의 로봇들이 우리 영역을 침략했다는군


스켑 : 뭐? 망할 놈들


큐리 : 앗? 왜 또?


이디 : 미친놈들. 아주 죽으려고 환장했구먼.


휴티 : 휴우….


엑스 : 우리 영역을 침범했으니 군대가 출동하겠지. 로자리아 놈들. 이번 기회에 완전히 끝장을 내야지. 우리가 정의니까.


이디 : 그래, 다들 죽여버리자고!!


큐리 : 또 중계해 주려나? 저번에 재미있었는데.


스켑 : 누가 우월한 존재인지 이번에 똑똑히 알려줘야지.


휴티 : 휴우….


로봇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로봇 집단에 대한 비난을 쏟아부우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들의 머리 위로 수많은 전투기와 전투 로봇들이 날아갔다. 하늘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로봇들은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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