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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28. 2022

12월 28일 박동준의 하루

위험한 사람 

5개월 전 동준은 지인 추천으로 이직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을 본 곳은 동준이 일하는 분야에서 가장 이름 있는 회사였다. 면접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동준은 어렵지 않게 이직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지인 추천으로 이직한 동준이었지만 정작 그를 추천한 사람은 동준이 오기 전 퇴사했다. 동준은 이직하기 전날, 지인을 만나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었다. 


“아니, 저 추천까지 해주셨으면서 왜 저보다 먼저 나가시는 거예요? 저 유성 님이랑 일하는 거 기대했는데.”


“미안해요. 미안해. 여기 별로라서 나가는 건 아니니깐 너무 걱정 마세요.”


유성은 동준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아니 뭐 미안할 것은 없고요. 여하튼 떠난다니 아쉽네요.”


동준은 유성의 잔에 자신의 술잔을 부딪히며 말했다. 


“음…. 한 가지 조언해드리면 이상현이라는 분을 조심하세요.”


“뭘 조심해요?”


“그냥…. 좋은 분인데 같이 일하면 피곤한 스타일이에요.”


“하.. 설마 그분 때문에 퇴사하시는 건 아니죠?”


“에이, 아니에요. 집 가까운 데 가려고 이직하는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유성이 대충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동준은 유성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동준은 유성에게 더 깊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동준은 새로운 회사에 첫 출근을 했다. 회사에 동준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그가 회사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될 것은 없었다. 동준은 똑똑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은 빠르게 그를 자신들의 동료로 받아들였다. 

동준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준은 조금 어려운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유성이 경고했던 이상현이었다.

이상현은 동준의 상사였다. 동준이 입사했을 때 그는 휴가 중이었다. 휴가에서 돌아온 상현은 처음 동준을 만난 자리에서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동준은 상현과 악수하며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조심히라는 유성의 말과는 다르게 상현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상현은 잘 생긴 외모, 시원시원한 성격, 그리도 사람들을 홀리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남자였다. 오히려 동준은 그런 상현 밑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현을 만나고 일주일이 지난 후, 동준은 그의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현은 출세지향적이었고 자기도취적이며 일을 잘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평소에는 친절하지만 자신에게 손해가 생길 것 같은 일이 발생하면 굉장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회의 시간이 되면 항상 상현만 말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상현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말할 시간 자체를 주지 않았다. 모든 대화에 있어서 상현의 주도권이 있어야 했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방해했다. 그리고 결국엔 자신의 주장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나름의 논리로 무장해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려고 했지만 강압에 의한 주장이라 허점도 많았다. 

동준은 그런 허점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상현이 비이성적인 판단을 하면 동준은 왜 그 일이 지금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개선하면 좋은지를 가감 없이 말했다. 그러면 상현은 기분 나쁜 티를 바로 냈다. 그는 동준의 의견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다. 그냥 무시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동준을 교묘하게 가스라이팅하기 시작했다. 상현은 그렇게 해서 동준을 자신의 사람으로 회유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준은 상현의 술수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자 상현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동준을 망신주기 시작했다. 그는 동준이 없는 자리에서 동준이 얼마나 일을 못 하는지, 실수가 많은지에 대해 소문을 냈다. 아직 동준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그런 상현의 말을 믿었다. 그렇게 1~2달 정도 지나자 동준은 어느새 무능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심지어 동준마저 상현의 가스라이팅에 넘어가 자신이 어쩌면 일을 못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1달의 시간이 지났다. 동준은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상현의 뜻에 넘어가 무기력한 직장인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동준은 회사 내 그나마 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 넣고 상현에게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동준의 동료들은 상현과의 일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동준은 회사의 인사팀에 상현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그 역시 지금 당장은 무리였다. 동준에게는 다른 무기가 필요했다.

다시 1~2주가 지나고 동준과 상현 사이의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동준은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상현에게 저항했다. 동준은 상현과 대화하는 동안 끝없는 전쟁터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동준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전체 회의를 하는 날, 상현은 평소와 같이 자신의 방법이 유일한 방안이라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묵살하고 있었다. 상현의 태도를 가만히 보고 있던 동준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상현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고 그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회사가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는지 조목조목 따졌다. 상현은 크게 당황했고 회의를 듣고 있던 상현의 상사들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며 어리둥절했다. 곧이어 동준은 자신이 너무 흥분해서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준은 자신의 행동이 후회됐다. 

그러나 회의에 참석한 한 상사는 지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회의가 끝난 후 동준을 따로 불러 상현에 대해서 하나하나 물었다. 동준은 상사라는 사람이 상현의 성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상현의 잘못을 상사에게 말했다. 상사는 진지하게 동준의 의견을 청취했다. 그리고 그는 동준뿐만 아니라 상현과 같이 일하는 다른 동료들의 의견도 물었다. 몇몇은 상현의 잘못을 솔직하게 말했고 몇몇은 별 문제가 없다고 하며 침묵을 지켰다. 

다음 날, 상사는 상현을 불러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를 망신 줬다. 동준을 비롯해 상현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보이는 장소에서 상사는 상현을 크게 혼냈다. 상현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는 상사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는 그 순간 상사가 아닌 동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며칠 후, 상현은 회사에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항상 자신감 있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언제나 자신이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망신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퇴사하는 그 순간까지도 동준을 욕하고 다녔다. 몇몇 사람들은 그런 상현의 말을 무시했지만 몇몇은 그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준이 정치질을 해서 상현을 몰아냈다고 생각했다. 상현을 크게 혼냈던 상사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상현 님이 하신 행동, 내가 봐도 심해서 혼내기는 했지만 이번 일로 동준 님도 기고만장하면 안 됩니다. 제가 지켜볼 거예요.”


그리고 오늘 상현은 마침내 퇴사했다. 동준은 상현에게 화해의 악수를 청했지만 상현은 여전히 동준을 무섭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상현은 동준에게 ‘그렇게 사는 거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상현이 퇴사하는 것을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동준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회사에서 괜히 나댄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마음의 안정이 찾아올 것 같았지만 동준의 마음은 더욱더 혼란스러웠다. 동준은 크게 한숨을 쉬고 상현의 빈자리를 쳐다봤다. 그렇게 잠시 멍하게 있다가 그는 다시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동준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일을 열심히 해서 상현이 하던 것 이상의 성과를 내는 것뿐이었다. 동준은 마음을 다잡고 힘차게 키보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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