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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29. 2022

12월 29일 김예준의 하루

10대의 끝

예준은 빨리 올해가 끝나기를 바랐다. 이제 그는 며칠만 지나면 성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예준은 언제나 자신이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청소년은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었고 그나마 할 수 있는 것도 제약이 많았다. 또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 같았기에 예준은 원치도 않는 공부를 해야 했다. 집, 학교, 그 외 외부의 수많은 곳에서 예준을 압박했다. 예준은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거 알아? 이제 만 나이로 하는 거라 우리는 내년에도 19살 일거래.”


예준의 친구가 핸드폰을 보면서 말했다.


“뭐? 우리 성인 되는 게 바뀌는 건 아니지?”


예준이 물었다.


“그런 건 상관없을걸? 당장 내년 1월 1일이 되면 술도 사 먹을 수 있잖아. 우리 그때 12시 땡 하면 바로 술집 갈 건데 너도 갈 거지?”


“아니 그런 건 관심 없어. 술 같은 거는 별로.”


“그럼 넌 성인이 되면 뭘 먼저 하고 싶은데?”


“그냥? 어른할래 어른.”


“앵? 1월 1일부터 너 성인 맞아. 술이랑 담배나 하자.”


“그건 너나 해.”


예준은 술과 담배에 관심이 없었다. 항상 술이 취해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예준은 술이 지긋지긋했다. 아버지 몰래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준은 담배도 입에 물고 싶지 않았다.

예준은 그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예준은 구체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스무 살이 되어 아무도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 상태, 그 상태만을 바랐다.

예준은 1월 1일 날짜로 기차 티켓을 끊었다. 그동안 모은 용돈으로 혼자만의 여행을 갈 생각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의 첫 여행. 부산에 간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부산에서 무엇을 할지, 부산 다음에 어디를 갈지, 언제 다시 서울로 돌아올지,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예준은 부모님에 1월에 여행을 갈 것이니 자신을 찾지 말라고 했다가 혼났다. 하지만 예준은 부모님의 꾸지람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예준은 성인이 되면 모든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12월 29일. 예준은 하루 종일 시간만 확인했다.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았다. 불과 3일 정도만 남았지만 예준에게는 30년에 가까운 시간 같았다. 예준은 잠을 자기로 했다. 잠이라도 자면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지날 것 같았다.

그때 예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예준이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니 삼촌의 연락이었다. 전화를 받은 예준은 지금 당장 나오라는 삼촌의 말에 바로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예준은 삼촌을 좋아했다. 예준의 삼촌은 예준이 바라던 인생을 살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준의 삼촌은 그의 부모님, 즉 예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바라는 삶을 살지 않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예준의 삼촌이 명문대에 들어가 검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바랐다. 공부를 곧잘 하는 삼촌이었기에 그들이 가진 기대는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예준의 삼촌은 그들이 바라는 데로 명문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삼촌은 학교를 다닌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휴학계를 내고 학교를 떠났다.  가족들은 그런 삼촌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휴학계를 낸 예준의 삼촌은 바로 군대로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몇 년 후, 군대에서 전역한 삼촌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악기를 들고 밴드를 만들겠다며 계속 돌아다녔다. 그가 만든 노래는 제법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삼촌의 이름이 유명해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갑자기 얻은 인기는 갑자기 식었다. 가족들은 그런 삼촌이 다시 그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저만큼 방황했으니 이제 돌아오겠지.’ 가족들의 생각은 그러하였다. 삼촌의 여동생인 예준의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삼촌은 그 이후에도 자유롭게 살았다. 예준의 어머니는 그런 삼촌을 다시는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예준은 삼촌의 존재를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예준이 보기에 삼촌의 삶은 행복해 보였다. 예준은 그것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삼촌의 집에 도착한 예준은 삼촌이 만들어준 볶음밥을 먹었다. 밥알은 탔고 양념은 제대로 뭉쳐져있지 않으며 야채의 크기도 제각각인 형편없는 요리였다. 하지만 예준은 그런 삼촌의 볶음밥을 좋아했다. 예준은 볶음밥만 봐도 삼촌의 제멋대로인 삶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누나한테 들었어. 너 여행 간다면서?”


밥을 먹고 있는 예준에게 삼촌이 물었다.


“네. 1월 1일 새벽 기차로 떠나려고요.”


예준이 입 안 가득 밥을 넣고 말했다.


“어디 가려고? 돈은 있어?”


“그동안 모은 돈은 충분해요. 일단 부산 갔다가 그다음에 생각해 보려고요.”


“충분? 넌 얼마나 충분한 돈인 건데?”


“어…. 한 일주일은 잠도 자고 밥도 먹을 수 있을 정도?”


“그래? 잠은 어디서 자게?”


“찜질방이나 싼 모텔 있으면 거기서 자려고요.”


“구체적인 계획이나 그런 것은 없나 보구나.”


“에이, 이제 어른인데요 뭐. 그동안 너무 얽매어있어서 좀 자유롭게 사려고요.”


“자유. 좋지. 네 도전은 언제든지 환영이야.”


“고마워요. 삼촌.”


“그런데…. 계획이 없는 것도 좋긴 한데 진짜 계획이 없으려면 계획을 짤 줄은 아는 사람 이어야 하는 건 알고 있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가 뭘 하고 싶은지를 알아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거야.”


“하고 싶은 거요? 그냥 기차 타는 거예요.”


“그래. 어른이 되었으니 네가 하고 싶은데로 하는 거지. 그런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면 결국 내가 지금 어딜 헤매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게 될 수 있어.”


“음…. 삼촌은요? 삼촌은 어땠는데요?”


“나? 누나나 엄마, 아빠는 내가 계획 없이 산다고 맨날 뭐라 그랬는데. 사실 난 하고 싶은 거 있었어. 음악 한 것도 그렇고. 나는 보헤미안 같은 삶을 사는 예술인이 되고 싶었어. 지금은 이 모양이 되었지만.”


“처음부터 그런 목적이 있었어요?”


“나는 그랬지. 대학교 입학하는 날부터 마음속으로 디데이를 잡았어. 한 달만 학교를 다녀보자. 대신 열심히 다녀보자. 그랬는데도 마음에 안 들면 때려치우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렇게 생각했지.”


“근데 저는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삼촌처럼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똑똑한 것도 아니고.”


“네 재능이 뭐가 없는지 나는 모르겠어.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니깐. 지금은 무의미한 이야기지. 여하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여행은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겠다는 목적을 가져보는 게 좋다는 거야. 꼭 이번에 답을 찾으라는 건 아니야. 그냥 좋은 풍경 보고 맛있는 것 먹고 하다가 아주 잠깐잠깐 생각해 보고,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또 이동하고, 생각해 보고. 그러라는 거지.”


“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삼촌답지 않게 뭔가 저에게 설교하는 내용이 많네요.”


“왜 나도 꼰대냐? 나이가 있는데 나도 꼰대겠지. 자, 이거 받아라.”


삼촌이 예준에게 봉투를 내밀면서 말했다.


“이게…뭔….”


예준이 봉투를 받으며 물었다.


“뭐긴 뭐야. 삼촌이 주는 용돈이지. 너네 부모님도 아마 용돈 주실텐데 일단 나도 준다. 얼마 되지는 않는데 네가 맛있는 거 한 끼는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와. 누나한테 다시는 안 돌아올 것처럼 이야기는 하지 말고.”


“…. 알았어요. 고마워요. 삼촌. 여행 끝나고 삼촌네 와서 자고 가도 될까요?”


“그럼 언제든지 여긴 환영이다. 최소한 네가 하고 싶은 것 하나는 생겼구나.”


“그래요. 그럼 먼저 갈게요.”


“응. 그래. 잘 다녀오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라. 남는 게 시간이니.”


“고마워요.”


예준은 삼촌에게 인사를 마치고 그의 집을 나왔다. 예준은 삼촌의 말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삼촌의 말 역시 어른들의 쓸데없는 잔소리 중 하나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예준은 삼촌의 말이 모두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어른이 된 예준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예준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12월 29일이었다. 29일이 끝나기까지도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예준은 하늘을 바라보며 어서 남은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를 기도했다. 예준은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랐다. 예준은 눈을 감고 다시 눈을 뜨면 하루가 지나있기를 바랐다. 예준은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그는 속으로 3초를 셌다. 3초 후, 예준은 손을 내려놓으면서 눈을 떴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고 여전히 12월 29일의 하늘이 보였다. 예준은 한숨을 쉬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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