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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30. 2022

12월 30일 한필성의 하루

종무식

오늘은 일을 하지 않고 회사의 종무식에만 참여하면 되는 날이었다. 필성은 회사에서 오라고 한 12시에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 현관에는 수많은 종이봉투가 있었다. 필성은 봉투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려다가 그만두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은 텅텅 비어있었고 회사 구석에 있는 휴게 공간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필성은 휴게 공간으로 다시 이동했다.

휴게 공간에는 회사에서 준비한 케이터링 음식이 놓여있었다. 훌륭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제법 구색 맞추기에 좋은 정도의 음식이 비치되어 있었다.


“필성 님. 이거 이름표 받으시고요. 여기 통에서 번호표 뽑아주시면 됩니다.”


음식을 구경하던 필성 앞에 인사팀 승민이 나타났다. 승민은 속이 보이지 않는 통을 필성에게 내밀었다. 필성은 통 안에 손을 넣어 잡히는 종이를 하나 꺼냈다. ‘3’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오 3번이네요. 3번은 저 오른편 자리입니다. 저기 앉아주세요.”


필성은 승민의 안내에 따라 오늘 ‘3’이라는 숫자를 뽑은 사람들의 테이블로 이동했다. 테이블에는 다른 팀 직원들이 이미 앉아있었다. 필성은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필성 님. 가서 음식 가져오세요. 먼저 먹고 있어도 된다고 하네요.”


테이블에 앉은 사람 중 가장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은 규식이 말했다. 필성은 배가 그리 고프지는 않았지만 규식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의 앞에서 “저는 괜찮습니다”라는 말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호의를 거절하는 말을 싫어했다. 예의 상 하는 말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필성은 음식을 훑어보았다. 가져올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괜찮은 것들을 몇 개 고른 필성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필성은 그리 원치 않았지만 규식과 대화를 나누면서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휴가자를 제외한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잡았다. 승민은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고 오늘 있을 행사에 대해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2022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아 물론 진짜 마지막 날은 내일이지만 내일 회사 오실 분은 없을 테니깐. 오늘은 간단하게 직원 분들끼리 팀워크를 다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같이 게임도 하면서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지금 각각 같은 번호를 뽑은 분끼리 앉아있는데요. 타 팀이라서 이야기를 많이 못해본 분들도 있을 텐데 이번 기회에 대화 나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게임을 통해서 회사에서 준비한 경품을 지급하는 이벤트도 있으니 오늘 열심히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먼저 오늘 행사를 마련해주신 우리 최진표 대표님을 모시겠습니다. 박수로 환영 부탁드립니다.”


승민의 소개와 함께 회사의 대표가 등장했다. 필성은 박수를 치면서 ‘이런 거 할 시간에 그냥 집에나 보내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 저… 이거 마이크 잘 나오는 거죠? 아, 아. 마이크 볼륨이 좀 작은 것 같은데? 어.. 어 그래 그것 좀 올려줘요. 아! 아! 좋아요. 이제 잘 들리네요. 안녕하세요. 다들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대표가 미소를 지으며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직원들은 영혼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목소리가 왜 이리 작죠? 다들 맛있게 식사하셨죠?”


“네!!!”


필성은 ‘군대도 아니고 왜 이러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럼 올해 우리 회사가 얼마나 성장했고 내년 목표는 어느 정도인지, 그 이후 우리 회사의 방향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지금도 업무의 연장이니깐 다들 집중해 주세요. “


대표는 PPT를 켜서 현재 회사가 얼마나 위기 이은 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직원들이 열심히 했다는 말은 처음 나온 것 외에는 더 이상 없었고 오히려 직원들을 혼내는 말이 많았다. 필성은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의욕이 꺾였다.

대표의 발표는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특히 그는 회사의 다음 비전을 이야기하며 직원들이 지금의 2배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일에 치어 사는 필성은 그 이야기를 듣고 약간 울컥했다.

대표의 발표가 끝나자 직원들의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누구 하나 말을 쉽게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다시 직원들 앞에 선 승민은 다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농담을 했지만 직원들은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승민이 미리 준비한 게임이 시작되자 그나마 분위기가 다시 좋아졌다. 직원들은 오랜만에 모든 것을 잊고 웃고 떠들며 게임에 임했다. 그리고 각자 경품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시작했다. 이런 것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필성도 기분을 전환하고자 열심히 게임에 참여했다.

그렇게 2시간 정도가 지나고 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직원들은 회사에서 미리 준비한 경품을 받았다. 필성도 경품을 탔는데 그가 받은 것은 값이 조금 나가는 바디 로션이었다. 필성은 경품을 보고 실망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행사가 끝나자 대표가 다시 직원들 앞에 섰다. 그는 자신이 아까 너무 무겁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며 내년에는 다들 열심히 일해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진부하게 직원들과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까지 잔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대표의 말이 마무리되면서 회사의 종무식도 완전히 끝났다. 직원들은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집에 갈 수 있었다. 필성이 집에 가려고 하는데 승민이 회사 입구에 있는 선물을 각자 다 들고 가라고 했다. 오늘 회사에 들어올 때 필성이 봤던 것이었다.  필성은 입구에 있는 종이봉투를 챙겨 나갔다.  

집에 가며 필성은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번엔 수건이었다. 필성은 ‘뭐 하러 쓸데없이 종무식을 하고, 쓸모없는 선물이나 주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필성은 수건과 샴푸를 종이봉투에 넣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는 마지막이지만 그냥 이번 주의 마지막일 뿐이고. 다음 주면 또 원래대로 지겨운 하루가 시작되겠지.’


필성은 한숨을 쉬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 뒤에 섰다. 그는 머릿속을 비우기로 했다. 곧이어 지하철이 도착하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필성은 사람들의 뒤를 따라 열차를 탔다. 그렇게 그는 올해의 마지막 퇴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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