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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Dec 31. 2022

12월 31일 조호준의 하루

30대의 끝

10년의 끝. 내 인생의 4번째 10년이 끝나는 날이 되었다. 오늘은 그냥 한 해가 끝나는 날일 뿐이었지만 이번엔 기분이 묘했다. 잠시 옛 생각을 해봤다.

첫 10년의 끝. 10살이 될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 10살이니 아마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아마 그때는 국민학생이었을 것이다. 국민학생.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다. 그리고 요즘 애들은 아마 이 단어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요즘 애들이라 하기에도 민망하다. 초등학교라는 말이 익숙해진 것도 이미 예전 일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10살의 나는 아마 신나게 애들이랑 축구를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새로운 10년이 가져다주는 부담감을 그때의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10년의 끝. 내가 20살이 되었을 때다. 10대 때는 너무 많은 변화를 겪었다. 노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였던 꼬맹이는 어느 날부터 공부가 내 본분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공부를 못 하는 것은 죄악이었고 공부를 잘해도 아주 잘해야 학교에서 주목받을 수 있었다. 공부를 못 한다는 이유만으로 체벌을 받았고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도 나를 때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을 주고 다니는 학원에서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10대 때는 하루라도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를 바랐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그러면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 더디게 지나갔다. 빌어먹을 학생이라는 시절은 영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19살 정도가 되지 하루하루가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좋은 대학교에 가지 않으면 인생이 망한다고 생각하던 시기라 어떻게든 성적을 올리고 싶었다. 공부가 취미는 아니었지만 살기 위해서 공부를 했고 오직 대학교에 가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꿈에 그리던 대학생’은 이상한 표현인 것 같다. 대학생이 어떻게 내 꿈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 그건 그냥 또 다른 학생일 뿐인데?

그렇게 20살이 되자, 나는 준비도 없이 세상에 던져진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저 공부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말은 모두 거짓일 뿐이었다. 잘 되는 것은 어떤 것도 없었다. 누가 나에게 강요를 하지 않을 뿐, 더 열심히 살아야 했다. 어릴 때는 성적이 안 좋으면 혼나거나 맞는 것으로 끝났지만 대학교에서의 성적 부진은 내 미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이었다. 그리고 돈도 벌어야 했다. 세상에 나가 돈을 버는 행동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내 성질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무조건 참아야 했다. 그게 어른의 길이었다. 

그러다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대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어떤 것도 내 선택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됐다. 때리면 맞고, 혼나면 가만히 듣고 있고, 나를 갈구면 그냥 참고 있으면 됐다. 그렇게 짬을 먹고 상병, 병장이 되자 군대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이 되어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적어졌다. 전역을 앞두고 있을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 같았다. 이대로 전역을 하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착각이었다. 부대를 나옴과 동시에 나는 다시 약자가 되었다. 빵꾸 난 성적을 메워야 했고 알바도 미친 듯이 했다. 그러면서 취업을 위한 준비도 해야 했다. 토익? 자격증? 자소서 쓰는 법? 면접준비?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를 해도 내가 갈 수 있는 회사는 없었다. 내가 가고 싶은 회사는 나를 받아주지 않았고 내가 가고 싶은 회사는 적었다. 주위에서 하나 둘 취업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기업이 나를 뽑아줬다. 그들이 나를 겨우 살려줬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회사였지만 1년 정도 다니고 나서는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회사의 시스템은 견고했고 나는 그것에 적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쉽지 않았다. 일도 일이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더 심했다. 게다가 술을 마시지도 못하는 나였지만 회식을 좋아하는 상사 때문에 억지로 그들이 부르는 곳으로 끌려가야 했다. 모든 것이 괴로웠다. 

그렇게 나는 3번째 10년의 끝을 마주하게 되었다. 30살. 여전히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매달 내 통장을 스치는 월급을 보며 겨우 겨우 버틸 수 있었다. 그래도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회사의 생활 방식에 나를 맞추니 그렇게 괴로워할 것은 없었다. 그냥 그들이 바라는 데로 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타협을 배웠다. 

10대와 20대 때는 그렇게 느리게 가던 시간이 30대가 되니 체감 상 2~3배 이상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제 일은 커녕 오늘 먹은 점심도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 같은데 알고 보니 한 달도 전 일인 적도 있었다. 이렇게 기억력마저 나빠지니 시간은 더욱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다. 

30대 중반.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2년 후,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아빠로서의 삶은 신기하면서도 힘들었다. 회사일을 마치고 오면 아이를 계속 돌봐야 했다. 처음에는 억울하기도 했지만 휴직을 하고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아내를 생각하니 내가 마음을 잘못 먹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잘 돌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나에게 불만이 많았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잘 싸우지도 않았던 우리였지만 아이와 행복하게 있어야 하는 우리는 매일 같이 말다툼을 했다. 아이 앞에서 그러고 있으니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래도 그런 우리 부부의 긴장감을 해소시키는 것은 또 아이였다.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아내와 나는 우리가 싸운 이유를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가 주는 그 행복에 집중했고 다시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자란 만큼 내 나이도 3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네 번째 10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대학교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던 시기도 어느새 20년이 지났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징그러웠다. 나는 여전히 20살인 것 같은데 딱 그만큼 시간이 더 흘렀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괜히 만으로 나이를 세면서 내가 아직은 30대일 것이다라고 내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다. 사실 이제 만 나이가 표준이 된다고 하니 아예 틀린 말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여태까지 한국 나이로 계산했으니 내가 한국 나이로 40살이 된다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40살. 정말 끔찍한 말이다. 10살, 20살, 30살이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과는 전혀 다른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 이 40대라고 하는 나이도 소중해지는 시기가 오겠지. 예를 들어 70살이 된 나는 40살이었던 나를 무척이나 그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0살이 된 나는 70살의 나를 그리워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다들 아이를 키우는 비슷한 처지라 오래 만날 수는 없지만 아주 잠깐이나마 시간을 내서 40살을 맞이하는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친구들도 그런 시간이 필요했는지 내 연락을 받자마자 다들 흔쾌히 허락했다. 

약속을 잡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지난날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봤다. 수많은 장면이 떠올랐다. 다행이었다. 행복한 순간이 이렇게나 많다니. 내가 인생을 헛 산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제 새로운 10년. 나는 예전보다 더 열심히 살 것이고 예전보다 더 많이 행복한 순간을 찾을 것이다. 그게 내가 새로운 10년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마친 나는 아내와 놀고 있는 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나를 반가워하며 안긴다. 아내와 아이를 쳐다봤다.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해주는 두 사람이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아내가 아저씨 같다며 수염이나 깎고 오라고 핀잔을 줬다. ‘그래 나 아저씨 맞는데요.’ 라며 아내와 아이에게 달려들어 안기려고 했다. 아내는 ‘이 사람 왜 이래?’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아이는 그런 내 모습이 재밌는지 깔깔 웃는다.  그래, 내 30대의 마지막. 그 순간은 지금 이 장면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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