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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열나는 아이 키우기

소아과는 도움이 안 되고, 맞벌이 부부는 버텨야 한다

by 우주소방관

아이가 아프니 모든 것이 멈추었다.

아이의 학교 생활도, 엄마의 직장도, 아빠의 일도.


삐그덕삐그덕,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지만 그래도 하루는 살아내야 하니 힘을 쥐어짰다.


금요일 저녁.

첫째가 밥을 먹다 말고 배가 아프다며 소파에 누웠다. 순간 나와 남편은 쎄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날 밤부터 아이의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37도, 38도, 39도…


주말이니 해열제를 잘 먹다 보면 곧 회복하리라 믿었다. 예전에도 늘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열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 월요일 학교를 결석했다. 남편이 재택근무로 바꾸어 아이 곁을 지켰다.


화요일.

또 결석. 이번엔 내가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둘째와 함께 집에서 첫째를 돌봤다. 잘 놀고 잘 자는 것 같아도 금세 열이 오르니 두 시간마다 해열제를 줘야 했다. 잠시 눈을 돌릴 수도 없으니 어른 한 명은 반드시 옆에서 지켜야 했다. 하루가 한 달처럼 길게 느껴졌다.


수요일.

여전히 결석.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를 소아과에 데려갔다. ‘뭐라도 약을 받아오겠지’ 했는데, 의사는 “괜찮을 거다, 걱정하지 마라”는 말만 남기고 돌려보냈다. 빈손으로 돌아온 남편을 보니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국에 있었다면 벌써 뭐라도 해봤을 텐데… 아이 옆에 앉아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내가 더 미웠다.


목요일.

열이 잡힌 듯해 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셔틀에서 내린 아이의 손을 잡는 순간 뜨거움이 전해졌다. 담임 선생님은 “기침은 조금 했지만 잘 지냈다”고 하셨지만,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다시 열이 치솟고 코감기까지 겹쳤다. 그 순간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 선택 하나가 아이를 더 힘들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무너졌다.


금요일.

학교 결석. 나는 직장을 또 쉬고 두 아이를 돌봤다. 그런데 이번엔 둘째까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두 아이가 함께 아프니 집안 공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이들을 번갈아 안다 보니, 내 몸도 여기저기 아파왔다.


‘일주일이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믿었지만 일요일까지도 해열제가 필요했다. 결국 월요일에는 얼전트 케어(응급진료소)에 가보기로 했다.


밤마다 아이 곁을 지켰다. 열이 오르면 열 때문에, 기침이 심해 토하면 토 때문에… 한숨 붙이지 못한 채 새벽을 넘겼다. 잠은 부족하고, 정신은 피폐해지고, 식욕마저 사라졌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져 갔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아플 때 늘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걸 우리 부부가 감당해야 한다. 타지에서 1세대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이렇게까지 고독한 일이라는 걸 다시 깨닫는다.


미국 의료 시스템에 나는 언제쯤 적응할 수 있을까. 처방전 하나 없이 돌려보내는 의사들을 보며, 그들도 자기 아이를 이렇게 키우는 걸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그 순간만큼은 원망이 앞선다.


결국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아이가 이겨내기를 바라며 곁을 지켜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부디 이 작은 파스들이 효과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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