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더를 위한 엄마표 바른 글쓰기
곧 첫째 아이의 킨더 학년이 끝난다.
긴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면 8월부터는 진짜 초등학교 1학년이 된다.
이쯤 되면 알파벳과 숫자는 정자로 또박또박 쓸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지난달 오픈 하우스(학부모 공개수업)에 갔을 때였다.
교실 벽에는 아이들 작품이 잔뜩 걸려 있었는데, 글씨들이 하나같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의 것은 달랐다. 알파벳이든 숫자든 방향도, 순서도 어딘가 어색했다.
혹시… 이렇게 쓰는 아이는 우리 아이뿐일까?
아무리 글쓰기에 흥미가 없더라도 적어도 정자로 쓸 줄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본인이 보든, 다른 사람이 보든 뭐라고 쓴 건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동안은 바르게 쓰는 것보다 일단 ‘쓰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엄마표 바르게 글쓰기’ 학습에 들어갔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동시에 입으로 말하기까지.
이런 식으로 기억하고 표현하는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앉아서 써 보자.”
이 말만 나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때부터 몸을 얼마나 꼬는지.
꽈배기처럼
꼬고,
또 꼬고,
또 꼬고.
어제는 나도 직장 문제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 있던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모습이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잘 참았던 것 같다.
그런데 E를 쓰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글씨는 자꾸 날아가고, 쓰는 순서도 뒤죽박죽.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대신 한 손에 지우개를 잡았다.
“틀렸어, 다시.” 지우고
“틀렸어, 다시.” 지우고
“틀렸어, 다시.” 지우고
겨우 반 장을 끝냈다.
목표치는 한 장이었지만, 반 장만 하고 싶다는 아이의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그래서 주변 정리를 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옆에 서 있던 아이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에에에에엥—!”
그때는 왜 우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물었다. 왜 우냐고.
한참 뒤에야 아이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가 말을 밉게 해서… 내 마음이 아팠어요.”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내가 또 예민하게 굴었구나.’
나는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온 마음을 다해서.
그리고 말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미운 말 하지 않을게.”
엄마표 공부라는 것.
정말 쉽지 않다.
이 시간만큼은 엄마와 선생님,
그 중간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아이와의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
아이의 잠재력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엄마의 끝없는 인내와 배려,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과할 줄 아는 용기까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신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들어 두셨을까?
몸은 하나인데.
자식을 위해서라면
없던 초능력까지 생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