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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0점에서 상위 10%까지, 단 세 달의 변화

첫 학부모 상담날, 미국 킨더의 깜짝 성장 리포트

by 우주소방관

새 학기가 시작되고 세 달쯤 지났을 무렵, 드디어 담임 선생님과의 첫 학부모 상담 시기가 다가왔다.

학교 학생들은 ‘NO SCHOOL day’로 이틀 동안 쉰다. 대신 그 이틀간 모든 학부모 상담이 진행된다.


상담 시간은 미리 온라인으로 오픈되어, 원하는 시간대를 직접 예약할 수 있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30분 간격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역시나 오전 시간이 가장 인기였다.

나도 9시부터 출근이라 8시 슬롯을 재빠르게 선점했다.


상담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질문지를 작성했다. 무엇을 물어보면 좋을까? 아이의 학교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알고 싶었다.


Q1. 최근 영어 실력이 많이 는 것 같은데, 선생님이 보시기엔 어떤지? 그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있을지?

Q2. 현재 ESL을 듣고 있는 것 같은데, 통과 테스트는 언제쯤 보는지?

Q3. 교우 관계는 어떤지?

Q4. 특정 친구와는 마음이 잘 안 맞는 것 같은데, 학교에서는 어떤지?

Q5. 점심 도시락을 자주 남기고 오는데, 아이 말대로 점심 시간이 정말 짧은지?


상담 시간이 25분이라 다섯 가지 질문이면 너무 짧은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일단 이 정도만 정리해 보기로 했다.


마침 상담날은 미국의 할로윈 데이!

그래서 나는 spooky pumpkin 코스튬 차림으로 학교를 찾았다. 바로 출근해야 해서 잠시 망설였지만,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덜 부끄럽고 꽤 즐거웠다.


교실 문을 열자, 선생님은 이미 여러 자료를 준비해두신 듯 보였다. 그중 내 아이의 이름이 적힌 두툼한 파일을 꺼내 설명을 시작하셨다.



1. MAP Growth (NWEA) 수학 진단 리포트

미국 초등학교에서 아이의 학습 성장 수준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표준화 테스트다.

- RIT 점수: 155

- 학년 평균(Norm Grade Level Mean): 141

- 백분위: 82–88–93% (전국 킨더 중 상위 7~18% 수준)

- 예상 성장 후 점수(FA26 Projection): 171



2. mCLASS Reading Progress Monitoring Report

(초기 문해력 평가 – 읽기 준비도 확인용)

Letter Names (LNF) – 알파벳 이름

- 월 점수 36점 = 벤치마크 도달.

- 대문자·소문자를 보고 이름을 말할 수 있는 단계.


Phonemic Awareness (PSF) – 음운 인식

- 8월 0점 > 10월 40점.

- cat = /c/ /a/ /t/처럼 단어 속 소리를 구별할 수 있음.

- 영어 읽기의 기초 완성 중.


Letter Sounds (NWF-CLS) – 글자 소리

- 8월 0점 > 10월 28점.

- “C says /k/”처럼 알파벳과 소리를 연결할 수 있음.

- 겨울쯤 리더북 A~B 단계 진입 예상.


Decoding (NWF-WRC) – 단어 해독력

- 8월 0점 > 10월 5점.

- “sam”, “cat”, “mat” 같은 CVC 단어를 읽기 시작함.



숫자로 현재 위치를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선생님이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시는 순간! 8개월 동안의 걱정이 한 번에 씻겨 내려갔다.


행복했다. 평균만 해도 고마웠을 텐데, 평균을 넘어섰다니. 그 순간, 당장이라도 아이에게 달려가 꽉 안아주고 싶었다.




잠시 후, 선생님은 또 다른 자료를 꺼내셨다.

Self Evaluation.

아이가 직접 작성한 자기평가표였다.

이건 단순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학교생활을 얼마나 잘하고 있다고 느끼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었다. 정서적 안정감과 자기 인식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했다.


1. 학급 적응력

“교사 지시 따름”, “타인의 말 잘 듣기”를 최고 점수로 표시.

교실 문화에 잘 녹아 있고, 영어 규칙도 이해 중이라는 뜻.


2. 과제 수행

유일하게 ‘중간’으로 표시한 항목은

“I get my work done when I am supposed to.”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언어 처리 속도가 느리거나

주변 환경에 주의가 분산되는 경우로 보임.


3. 정서·사회성

자신을 “좋은 친구”,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 평가.

교실 안에서의 자신감이 엿보였다.




사실 숫자보다 더 마음에 남은 건 이 자기평가표였다.

아이의 시선으로 본 ‘자기 모습’이 참 따뜻했다.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구나, 그 사실 하나로 이미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궁금했던 걸 물었다.

“혹시 ESL 통과 테스트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네? ESL요?

그런 수업은 받은 적이 없어요.

영어 수업은 전부 이 교실에서 진행됐습니다.”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

분명 학기 초에는 영어 실력이 부족해 ESL을 듣는다고 했었는데! 그런데 선생님이 더 놀라신 듯했으니, 이건 좋은 일이 분명했다. 결국 나는 웃으며 “그럼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하고 인사를 드렸다.


짧았던 25분.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나는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정말 대단해. 최고야. 멋지다.”

수백 번은 말했을 것이다.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지금처럼 서로 믿고, 꾸준히, 따뜻하게

그렇게 계속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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