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인사이드 아웃> 등 픽사 계열에서 나의 심금을 울렸던 피트 닥터 감독의 신작 영화 <소울>이 얼마 전 개봉하여 오랜만에 영화관을 다녀왔다. 정식 개봉은 올해 1월 20일이었지만,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오픈 시네마로 공개되었기에 영화 매니아들은 이미 감상을 마쳤을 수도 있다. 이 영화 한 편 때문에 부산을 방문할까 고심했지만 결국에는 정식 개봉일을 기다렸다가 관람을 했다.
'지구로 오기 전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기본 줄거리에 닿기 전에 시작부에서는 '조'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마음 속에는 어떤 삶을 원하고 있는지 나온다. 악기 다루기에 한창 관심 없고 지루해할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정규직 교사가 되었지만, 재즈 피아니스트를 업으로 삼고 싶은 조에게 4대 보험까지 보장된다는 직장도 딱히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조는 재능 없이 꿈을 꾸는 사람은 아니었다. 우상으로 생각하던 재즈 아티스트 도로테아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선보여 그의 재즈 밴드에 합류하게 되는 기쁨을 맛본다.
그러나 환희에 너무도 가득 찬 나머지,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하수구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사후세계로 가게 된다. 이제야 꿈 꾸던 삶을 눈 앞에 둔 조는 어떻게 해서든 생(生)의 영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great beyond'를 강하게 거부하고 'great before'로 스스로(?) 퐁당 떨어진다. 그 곳에서 어떤 것에서도 영감을 얻지 못 해 지구통행증을 오래도록 받지 못한 '22'의 멘토가 되어 어떻게든 지구통행증을 얻으려고 애쓴다.
음악에 평생을 매료되어 살았던 조와 달리 22의 태도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음악 뿐 아니라 음식, 운동 등 모든 것에 22는 아무런 흥미를 못하고 영감 한 조각 찾기를 포기한 듯한 태도였다. 온갖 종류의 예술을 좋아하며 살았고, 세상의 웬만한 것들은 다 배워보고 싶어하며 살았던 내 입장에서 이 장면이 참 흥미로웠다. 나는 여러 취미들을 즐기며 살았던 반면, 나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아무런 취미 없이 누워만 있는 집순이들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한 때는 그들에게 이런저런 취미의 즐거움을 알려주려고 했었지만, 그들이 아무 곳에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포기했다. 아마 22를 대하는 조의 심정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는 당장 오늘 저녁의 공연을 위해 지구로 돌아가야만 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구로 돌아왔지만 조의 몸에는 22의 영혼이 들어갔고, 조는 고양이의 몸에 들어가 그런 22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몸을 지니고 감각을 느끼게 된 22는 마치 어린 아이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피자의 맛에 감동하고, 흩날리는 낙엽과 부서지는 햇살에서도 황홀함을 느꼈고,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의 정(情)에 울림을 느꼈다. 영혼으로 'great before'에서 살면서 늘 구제불능 취급을 받았지만 막상 지구에 와보니 누구보다도 많은 의미를 느끼며 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이런 22의 태도에 조는 아무런 공감을 할 수 없었다. 목표의 깃발을 정해두고 그것만을 위해 달려왔던 조에게는 오늘 저녁의 공연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덕분에 조는 마침내 환상적인 재즈 공연을 선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다. 공연을 마치고 재즈 카페를 나와 문을 탁 닫으니 공허한 마음만이 가득했다. 자신을 뽑아준 도로테아에게 "그토록 꿈 꿔왔던 순간인데 생각보다 별로 행복하지가 않아요. 오히려 공허한 이 마음은 뭐죠?"라고 묻자 그녀는 바다를 찾아헤매던 물고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새로운 삶은 공연이 시작했을 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공연이 끝난 후에 드리워졌다. 조를 가슴 뛰게 했던 재즈가 목표가 아닌 일상이 되어버리니 일상의 모든 순간에 감탄하던 22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구에 있던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great before에서 소울들이 지구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던 제리들조차도 인생에는 목표와 영감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목표를 이루고 나서 필요한 것은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들이었다. 앞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삶이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버텨야 하는 것도 삶이기 때문이다. 삶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목표이고, 삶을 존재하도록 버티게 해주는 힘은 바로 일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 조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zone으로 깊이 들어가 22를 데리러 간다.
그 사이 22는 '영감을 빨리 얻어 지구로 가야 한다'는 목표를 위한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어둠의 태풍 속을 헤매며 괴로워 하고 있었다. 일상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깨달은 조만이 22를 지구로 데려올 수 있었다. 함께 지구로 뛰어들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지구에서 몸을 얻은 22가 어떤 삶을 살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일상만 영위하면 될 줄 알고 내려왔던 지구에서, 그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마땅한 직업과 적절한 목표를 찾느라 소울일 때보다 더 불행해질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본 우리는 안다. 결국 삶을 살아가는 데에 목표도 일상도 모두 필요하기에 그 중 하나의 소중함이라도 깨달은 사람이라면, 결국에는 잘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