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코가 새 집에 온 첫 날 밤, 타미오가 무슨 말을 하건 유미코는 그저 말없이 창문 밖만 쳐다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은 유미코의 얼굴만 비출 뿐, 타미오의 실루엣과 그림자는 모두 그녀를 바라보지만 유미코는 그런 그에게 제대로 된 눈빛 한 번 주지 않는다. 이렇게 정적인 화면 속에 파도 소리만이 어지럽다. 그리고 한동안은 파도소리 때문에 잠을 자기 힘들 수 있다는 타미오의 말처럼, 한동안은 유미코도 꽤나 마음이 어지러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지만 시간은 흘러 두 사람이 관계를 가지고 나서도, 둘은 어두침침한 방에 포개어 앉아 있지만 서로를 진지하게 바라보질 않는다. 서로 나누는 말은 꽤 다정한 것들이고 예쁘게 미소 짓고 있지만, 유미코는 이내 아이들이 오는 걸 자기가 망 보겠다며 또다시 창문 밖으로 시선이 향해버린다.
영화 초반부에 나왔듯 완전한 어둠은 또 한 번 나오는데, 이 때 창문을 열고 신새벽의 빛을 들이는 건 유미코다. 유미코의 시선은 또다시 창문 밖이다. 그런 유미코를 보고 방에 고드름이 생기겠다며 타미오는 창문을 닫으라 하고, 그 말에 유미코는 창문을 닫고 또 어둠이 된다. 오사카에 엄마를 보러 다녀온 뒤 또다시 어둠에 휩싸인 유미코는 스스로 창문을 열며 빛을 찾는다. 새 남편, 새 집에 약간은 정을 붙였지만 그 빛은 신새벽의 어스름한 빛처럼 완전히 밝게 그녀의 인생을 밝혀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창문을 닫으라는 남편의 '말'에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갔듯이, 남편의 '말' 때문에 유미코가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버릴 것이라는 복선이 아니었다 싶다.
오마모리가 무언지 모를 독자들을 위해 쓰자면, 일본어로는 '지킨다'라는 뜻도 되는데 일본에서 액운을 쫓기위해 가방이나 열쇠 등 자신의 소지품에 달고 다니는 작은 부적이다. 천으로 만든 주머니 형태에 부적을 넣은 것도 있고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방울 모양으로 생긴 것도 흔히 있는 오마모리 중 하나다. 일본 사람들은 그 방울이 딸랑 거릴 때마다 방울 소리가 액운을 쫓아준다고 믿는다. 그러니 오마모리는 남편을 생각하는 유미코의 마음이다. 자전거를 훔쳐와 제 것처럼 페인트칠을 하면서도 경찰이 온다고 장난을 치자, 새삼 불안한 심경을 드러내는 남편을 위해 어디선가 얻어온 하나뿐인 오마모리를 남편의 자전거 열쇠에 달아준다. 그 후로 이쿠오가 나오는 장면마다 거슬릴 정도로 오마모리의 딸랑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산을 잠깐 가지러 온 날, 자전거를 두고도 열쇠는 챙겼는데 오마모리의 딸랑이는 소리는 갑자기 들리지 않는다. 아내가 남편을 배웅해주는데 야속하게도 돌아보지도 않고 가더니, 그 날 밤 야속하게도 그 날 밤 오마모리가 딸린 열쇠만 돌아오고,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잊어가며 지낸다고 생각하던 때에 잠깐 오사카에 다녀오자 유미코는 또 마음이 흔들린다. 이쿠오와 같이 살던 방을 보다가 카메라를 바라보는 유미코의 정면샷은 약간 무서울 정도였다. 원망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슬퍼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한걸까...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두웠던 지하 창고의 전구를 갈아준 새 남편 타미오이지만 유미코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골똘히 생각하듯 앉아있다. 화면에 비춰진 제 기능을 다 한 전구는 아직 버려지지 않고 탁상에 뒹굴고, 그 옆의 시계는 오마모리의 색깔처럼 청록색이다. 새 남편을 옆에 두고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유미코의 꼭 쥔 두 손 안에 든 오마모리도 청록색이다. 청록색 탁상 시계의 시간은 똑딱똑딱 흐르지만, 그 옆의 전구는 수명을 다 했다. 새 전구는 저 멀리 지하방에서 제 할 일을 하려 한다. 유미코, 이쿠오, 타미오의 관계는 그렇다.
그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살다가 어느 날, 타미오가 연락도 없이 잔뜩 취해 늦게 들어온다. 유미코는 서랍에서 오마모리를 꺼내 만지작대다가 서랍도 닫지 않고, 타미오가 오자 황급히 코타츠에 앉는다. 유미코의 위치는 화면 정중앙이고, 집에 온 타미오가 앉는 자리는 화면 오른편이다. 고타츠에 온몸을 우겨 넣고 거의 안기다시피 몸을 뉘인다. 참 편안해보인다. 그 때 유미코가 대뜸 타미오에게 거짓말쟁이라고 원망 섞인 말을 던진다. 아버지가 걱정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게 아니라 원래 사랑하던 전 부인과 재혼하려고 여기로 돌아온 거라고 토메노 할머니한테 다 들었다고 말한다. 그런 유미코에게 돌아오는 타미오의 대답은 "내가 그 여자를 정말 끔찍이 사랑했었다"는 말이다. 그러더니 대뜸 일어나 유미코의 머리를 어린애 대하듯 헝클어뜨리며 "그런 복잡한 건 내일 얘기하자"더니 이번엔 화면 왼편에 앉는다. 아까와는 달리 코타츠에 다리 한 쪽도 넣지 않고 거만한 듯 걸터 앉더니 딴소릴 한다. 유미코는 이 롱테이크 씬에서 꼼짝 않고 줄곧 화면 정중앙에 앉아 있다. 꼭 쥔 두 손 안에는 또 오마모리가 들려있다.
이 장면에서 유미코와 타미오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또 어떤 결말을 맺게 될 것인지 모두 나온 셈이라 여긴다. 유미코는 예전의 이쿠오를 잊지 못하고 그대로 있지만, 타미오는 자리 옮기듯 아내가 바뀐 사람이다. 하지만 그 태도는 다르다. 전 부인에게는 폭 안겨 있었지만, 지금의 아내에게는 거만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