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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단이 Feb 08. 2021

<환상의 빛>- 환상의 빛/초록색과 자전거

환상의 빛


 유미코는 파란 숄을 두르고 장례식 행렬을 자기도 모르게 졸졸 따라 간다. 장례식 행렬은 파릇파릇한 나무와 가지만 남은 나무 사이를 지나간다. 이처럼 삶과 죽음이란 건 그렇게 너무 가까이 맞닿아 있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이고 가는 장례식이란 건 그렇게 삶과 죽음 사이를 지나가는 경계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장례식 행렬을 좇았듯이 유미코는 줄곧 죽은 이쿠오를 쫓아다니는 삶을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화장하는 것까지 지켜보고 있는 유미코를 타미오가 찾아온다. 그제야 제 사연을 털어놓는 유미코에게 타미오가 말해준다. "있지. 우리 아버지가 예전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셨었거든? 근데 바다에는 환상의 빛이 있대. 그래서 자꾸 따라가고 싶어진다는 거야.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있는 일 아닐까" 그토록 미친 듯 아파했는데, 그것 하나만 앓으면서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란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무덤덤하게 내뱉을 수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유미코에겐 이쿠오가 환상의 빛이고, 유미코의 할머니에겐 자신의 고향이 환상의 및이고, 타미오에겐 전 부인이 환상의 빛이고, 할아버지에겐 죽은 아내가 환상의 빛이다. 하지만 그 환상의 빛을 따라가면 죽음 뿐이기에 그 끝이 언제 오든 결국 비극일 수 밖에 없다.





초록색과 자전거


이쿠오와 유미코가 눈빛이 마주친 어린 날에도, 이쿠오는 자전거를 끌고 있었다. 그리고 훔쳐온 자전거는 초록색으로 페인트칠을 했고, 오마모리는 청록색이었다. 시장에 갔다가 만난 토메노 할머니가 차라리 아빠 얼굴을 모르는 게 낫다고 말하지만, 아빠 얼굴도 모르는 어린 아들이 자전거 가게에서 만지작 거리는 첫 자전거는 신기하게도 초록색이다. 그 초록색 자전거를 타고 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새 아빠와 논다. 그리고 유미코는 영화에서 거의 처음으로 밝은 색 옷을 입고 그 광경을 바라본다. 장례식 행렬을 좇아갈 때 둘렀던 파란 숄처럼 새파란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있다. 그리고 지하방을 지나 할아버지 옆에 앉아 "이제 날이 좀 풀렸네요"라고 하자 할아버지가 답해준다. 자전거를 배우며 동네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두 아이와 아빠를 카메라는 멀리서 롱테이크로 잡는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어 마지막에 비춰지는 곳에는 늘 유미코가 앉아 바깥을 바라보던 창가에 햇빛이 들고 바람이 솔솔 분다. 그 아래에 편지 한 장 써두고, 유미코는 환상의 빛을 따라간 듯 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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