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청량리동_김주현
12월 중순,
2024년을 절반쯤 남기고 다녀온 제기동.
이 때도 '춥다, 겨울이네' 했는데
지금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되려 따뜻했던 기억이다.
제기동 만남의 장소는 '홍파 아파트' 앞.
맞은편에서 길을 건널 생각을 하고 멀리서부터 얼핏 봐도 느껴지는 이 존재감.
제기동은 이 홍파아파트를 시작으로
나에게는 '오래됨의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감'이 정말 묵직하게 느껴진 동네였다.
특히 제기동의 인상적이었던 느낌들 중 하나는,
'와 이렇게 좁고 오래된 골목이 있어?'.
유난히 좁고 긴 골목들이 블록처럼 나란히 이어져 있었는데
그럼에도 좁거나 답답하다는 느낌보다는 '참 정갈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넓고 휑-한 도로들과는 대비되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 좁은 골목들도 오래도록 이 모습으로 우직하게 자리를 지켰기에
이 동네를 이제야 들여다보는 나에게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겠지,
골목골목을 드나들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시대에 살며 언제든 마음먹은 것을 경험할 수도, 공유할 수도 있지만
걸음걸음을 시간에 더해 직접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 좁은 골목에는 참 많았다.
그런데 오래됨이 멈추어 끝난 느낌이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제 색을 내며 움직이고 있는 듯한 모습.
이런 신문 보급소, 이런 모양의 글씨체며, 천막까지도.
분명 오래된 것들이었는데 되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참 신기했다.
제기동의 또 다른 강렬함은 '옥색'
이 또한 오래됨의 색이 분명한데 오래됨 속 조금 더 새로운 것들과 함께하니 너무나도 예쁘고 신비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옥색, 민트, 비취색.
궁이나 문화재에서 보았던 그 색인 것 같은데 이렇게 도시의 골목에서 콘크리트와 함께 조화를 이루니
이 또한 참 강렬했다. 이 역시 오래도록 존재했기에 더 강력하지 않았을까,
그대로 존재함도 그 자체로 존귀하지만
이렇게 새롭게 변화해 존재하는 모습 또한 참 많은 의미를 전했다.
오래됨이 선명함을 잃지 않고 자신의 색을 내면
그 어떤 화려함 보다도 강렬하고, 아름답고, 새롭구나.
그리고 말도 못 하게 세련되다.
부러 애써 발광(말 그대로 빛을 내는 모습) 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다니.
처음 가 본 제기동에서 강렬한 응원을 받고 왔다.
이번 골목 산책 후 쉬어가는 시간은
가까이 있는 경동시장을 들렀다.
옛 모습이 색깔을 뿜을 때의 강렬함, 경동시장도 그 자체였다.
청년몰에서 한참을 걸려 어렵게(?) 맛본 식사.
너무 쓸쓸한 모습으로 형식만 남은 모습이 대비되어 조금 아쉬웠다.
이곳도 힘을 더 내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낼 때까지 존재하길.
그 존재감을 드러낼 때까지 누구든 응원하고, 또 기다려주었으면.
여운이 많이 남은 제기동,
날이 풀려 따뜻해지면 한번 더 들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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