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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함 속 다정함

대림동_이정옥

by spacehost

신도림역 근처에 27년동안 부모님과 살았다. 나의 유년시절은 공장에서 시작해 아파트로 채워지는 나름의 신도시가 되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자라왔다. 경제 발전이 한창인 1970년대 산업단지가 신도림 뿐만 아니라 문래, 대림, 구로까지 거대한 공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산업시대의 끝물에 신도림에 이사를 와서 도시의 구체적인 형태보다는 안개 낀 무언의 형상과 그을린 냄새만 기억에 남는다. 한 정거장인 대림역은 신도림에 살면서 가본 적이 없었다. 영화 '범죄도시'를 보고 나서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 이후 뉴스의 사건을 통해 무서운 동네라는 인식이 박혔다. 답사 지역 선정은 네이버 지도의 길의 형태(주로 격자)를 보고 뷰어로 건물의 층수와 분위기를 살펴보고 결정한다. 시장을 중심으로 저층 주거들이 밀집되어 있는 것에 직접 눈과 몸으로 경험하고 싶었다. 진짜 무서운 동네일까?


대림역12번 출구 개찰구부터 한국이 아니었다. 중국인 말이 70프로 였으며 입구를 나가자 화려한 시장의 불빛이 가르키는 것은 이름 모를 음식들과 간판은 한글보단 한자로 표시되어 외국임이 확실함이 느껴질 정도었다. 영화와 뉴스의 여파인지 이상하게 몸을 웅크리고 동네를 기웃거린다. 시장의 불빛을 서서히 사라지는 골목으로 들어가본다. 다가구 주택들이 밀집해 있고 폐지를 줍는 할머니는 부지런히 박스를 옮기신다.


활기찬 시장과는 반대로 골목으로 들어서면 쉼을 표상하는 저마다의 집들의 모습과 골목을 활용한 대림 소통길 경로가 흥미롭다. 오랜 시간 무서운 동네일 거라고 대림동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기도 했다. 건물의 구조는 3층으로 무장하고 반지하와 옥탑으로 이루어져있다. 입구의 방향은 다양했으며 난간의 생김새가 치장을 담당한다. 난간은 개인(집의 주인)의 소유이지만 동시에 누구나 볼 수 있는 다수의 시각으로 거리 풍경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같은 지역에서도 건축 시기, 예산, 건축가의 개성에 따라 각기 다른 난간 디자인이 등장한다. 재료의 선택도 다양하며, 화려한 문양일 수도 또는 단순한 형태일 수도 있다. 이러한 우연성이 쌓이면서 다양한 시각적 흐름을 형성하는 건축적 리듬을 만들어낸다. 결국 도시는 일률적인 형태로 정리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거 대림동 일대는 논밭이 대부분인 농촌지역이었고, 1963년 영등포구로 편입되면서 1970년 이후 서울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주거공간과 시장도 많아지면서 임대료가 저렴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착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조선족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된다. 2000년 이후 한족(중국 한족),동남아 출신 이주하면서 다문화 문화가 형성된다. 이러한 변화를 보면, 도시가 이주민 유입과 경제적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모하는지 알 수 있다. 산업화 시대로 들어서면서 노동자 유입과 주거지가 형성되고, 중국과의 교류 증가로 대림동은 '리틀 차이나' 로 불린다.



계획적으로 통일된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다가구 주택들은 건축주마다 다른 선택을 하면서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그 결과 외관은 개별적인 감각을 담게 되면서 도시 속 작은 표정을 짓는 저마다 개성을 지닌다. 무질서해보여도 이러한 다양성은 도시를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거주 방식에 따라 화분을 놓고 어떤 꽃을 심는냐에 따라 거리의 풍경은 달라진다. 제각기 다른 모습이 아니라 개별적인 삶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방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무심코 스쳐가는 동네마다 다양함 속에 사람들의 삶을 향한 다정함이 깃들어 있는 것 아닐까.


어떤 꽃들이 길의 향수를 채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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