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거리의 탄생과 죽음에 관하여

문래月동

by spacehost

작성자_선


사람의 일생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세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동물도, 도시도, 나라도, 그다지 깊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구도 언젠가는 끝이 올 것이다. 그게 순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순식간에 허무해지곤 한다. 그 빈 공간을 메꿔주는 것이 바로 이야기 아닐까.

글을 시작하기 앞서 한참을 고민했다. 나는 왜 어반구스 필드워크에 참여했을까? 필드워크 후 쓰는 후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둘 모두에 대한 대답이 앞서 언급한 ‘이야기’다. 나는 내 인생이 허무하게 끝나는 대신 보람차고 재미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월동탐색에 참여했다. 문래동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모은 이야기 조각을 남기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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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은 일제 강점기에 경성으로 사옥정이라는 이름으로 편입되고, 해방 후 문래동이 되었다. 강 두 개가 합쳐져 모래가 많은 마을이라 모랫말에서 음차 했다는 설과, 물레를 개발한 문익점의 아들 문래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설과, 일제 강점기에 방직 공장이 많이 세워져 물레에서 따왔다는 설 세 가지가 있다. 최근에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던 문씨 어르신은 이 중에서 두 번째 이야기를 강력히 지지하고 계셨다. 정확한 유래야 역사학자들이 밝힐 영역이지만, 어차피 ‘썰’의 영역이라면 믿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이야기가 좋기는 하겠다.


시작은 방직공장 단지에서, 그 종업원들을 위한 주택가 ‘오백채’가 40년대에 지어졌다. 60년대에 영등포 일대가 산업단지가 되며 철공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해 7,80년대에는 지금의 문래동 하면 떠오르는 철강 자재 공급지로 딱 자리를 잡았다. 철강 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게 된 뒤에 생겨난 빈자리 한켠에는 예술인 마을이 들어섰다. 그리고 다른 한켠에는 아기자기한 식당들을 골목골목 자리 잡고 젊은이들을 불러 모은다. 오늘 조금 특별한 데이트는 어떠신지. 그리고 동네는 슬슬 술렁이기 시작한다. 보잘것없던 내 인생, 드디어 땅값이 올라 이제 꽃 피울 시기가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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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타래를 역사부터 풀기 시작했지만 사실 나는 역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문래동은 36년 경성부로 편입되어 (하략)’ 이렇게 되면 벌써 하품부터 나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 돌아다니다 보니 팀원들과 주거니 받거니 다양한 질문과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거기에 서로 조사해온 내용을 조금씩 보태가며 길을 걸었다.


남성아파트는 당시 가장 높은 고급 아파트였다면서요? 여기저기서 영일이라는 상호가 종종 보이는데, 유래가 뭐였을까요?(분식집일까?) 진주 아파트 옆 노란 천막 아래에는 도대체 뭐가 있었을까요? 어머, 어린이 도서관에서 목화 전시, 체험이 가능하대요! 문래 6가의 세련된 아파트들과 40년대에 지어진 오백채 주택가가 길 하나만 사이에 두고 있다니 되게 어색하네요. 박정희 흉상이 세워진 문래근린공원 옆에 5/16 쿠데타가 시작된 벙커가 있었대요. 대선제분 앞 길게 늘어선 시장가는 낮이라서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걸까요? 대선제분 공장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래요. 아, 여기가 모랫말 동산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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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가를 지나는 동안 토요일인데도 철강 작업 중인 곳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비어있었다. 삶과 죽음의 사이클 사이에서 굳이 따지자면 뒤쪽에 가까울 것 같은 느낌. 뻥 뚫린 슬레이트 지붕과 보도블록이 죄 흐트러져 사람이 걷기 어렵게 된 인도 틈새로 비집고 자란 잡초들. 녹슨 철제 기둥과 나무판자 사이로 가운데가 빈 긴 파이프 더미가 보일 때는 헷갈리기도 했다. 아직 ‘생존’ 중 일까, 사그라드는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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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대에 지어져, 내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은 오백채 주택가. 7, 80년대 전성기를 지나 IMF 이후 하향세를 달리고 있는 철강 산업. 사람들이 빠져나간 건물들은 이대로 방치되거나 재건축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저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와 역사가 있는 건물들이 그냥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쉽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 터에 자리 잡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중 하나로 2017년부터 도시공간을 혁신하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지역의 역사성과 특징을 보존한 채 도시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이라고. ‘문래창작촌’을 살려서 주거, 문화, 예술, 생산과 소비활동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지게 만들 예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문래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 온 맥락과 꼭 같은 이유로, 한번 재생사업을 실시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지 않을까? 모든 산업과 발전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니까. 또 ‘핫플레이스’마다 흔히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때문에 기존의 공장과 이곳을 살리려 모여들었던 예술가들이 쫓겨나고 예쁘게 포장되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것이 정말 이곳의 역사를 살리는 일일까? 오히려 나는 녹슨 슬레이트 담장 사이사이, 속속들이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편이 훨씬 즐거웠기 때문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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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문래동 답사에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답사를 하며 생각한 거리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것에 너무 몰입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12월까지 매월 있을 5번의 답사를 통해 지금의 고민에 갈피를 잡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어반구스 월동탐색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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