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어딘가에서

보광月동

by spacehost

작성자_선


보광동은 신라시대의 보광사가 위치해 있어 보광동이라 이름 붙게 되었다고 한다. 기우제를 위해 설치된 우사단이 놓여 우사단이라 이름붙여진 마을, 윗보광이와 아랫보광이, 둔지미 마을 등을 포괄하여 보광동이라 불린다.

Honeycam 2020-11-01 15-49-05.gif 이 보광사가 그 보광사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중 둔지미 마을은 오래전부터 도성을 지키는 군대가 주둔했던 마을로, 일제 때도 군사용지로 수용되고, 이후에는 미 8군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이전 근무하던 곳에서 평화기행을 하며 용산동, 이태원 일대를 돌아다녔던 적이 있다. 지금은 일본군'위안부'만을 문제삼고 있지만, 그 이후 이어진 한국 전쟁 때는 한국도 국가 차원에서 같은 역할의 여성들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 전통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위안부'라는 역할은 미군이 주둔하면서도, 그 이후에는 여행을 왔던 일본 남자들을 상대하면서도 쭉 이어져 왔다. 그래서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시간이 아주 오래걸렸다는 이야기에 좀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너무 사족으로 빠졌으니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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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사전조사 때는 미군 때문에 어쩌면 반사이익(?)을 본 부분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좀 했다. 어반구스를 통해 몇군데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그냥 그렇게 스러져가는 마을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재개발을 할지 말지나 고민하고, 그 역사를 남기는 방식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서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미국 제국주의'에 짓밟혔다고 생각해서인지 이 동네에 대해서는 아카이브도 잘되어있고 관련 역사가 정리된 책이나 뉴스 등 자료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나마 잘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하나, 설명하기 어려운 씁쓸한 기분이 혀끝에서 계속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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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역에서 내려 언덕을 오를 때 본 주택가 중 많은 건물들이 버려진지 오래였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지 오래된 낡은 건물들은 지금이라도 건드리면 툭 부서져내릴 것만 같았다. 재개발 예정지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안내판이 붙어있는 것도,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슬럼가처럼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도 충격적이었다. 군데군데 아직 거주하고 있는 거주민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종이가 붙어있기도 했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아직 까지 그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떠난 이들의 삶은 그럼 어떻게 되었을까. 경사가 높은 산맥을 오르느라 숨이 찼던 것도 있지만 무슨 말을 해도 적당할 것 같지 않아서 계속 조용히 오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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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언덕을 오르고 대사관들이 있는 곳으로 나왔을 때는 정말 다른 세상으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큼직큼직하니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화려한 방식으로 장식된 건물들. 읽을 수 없는 언어들로 자신의 출신국가들을 드러내고 있는 팻말들. 딱히 그들이 잘못한 건 아닌데 마음이 불편했다. 나의 내면에 있는 이런 불편함과 화해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어반구스 답사와 함께 깨닫게 된 부분이 하나 더 있다면, 원래부터 중심가였던 서울 사대문 내가 아닌 대부분의 동네는 비슷한 발달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던 아주 작은 동네에서, 한국전쟁시기의 피난민의 유입, 수재 난민 유입 등 외지인들이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발달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모든 동네를 다녀본 것이 아니니 일반화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보광동은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발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언덕 하나만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거대한 주택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도둑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니, 도대체 이 빈부를 가르는 갈림길은 뭐였을까? 도둑질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큰 집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은 이후에는 소리소문 없이 집주인들이 떠나, 지금은 다양한 대사관들이 자리잡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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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답사한 문래동, 성수동, 대학동을 포함해 이번 보광동에서도 재개발에 대한 고민은 계속 끊이지 않는다. 이 곳에서 살다간 사람들, 고단함과 그 역사와 이야기를 담으려는 책자를 비롯한 아카이브 시도가 많다는 것은 역시 기쁜 일이다. 내가 풀어내지 못한 이 답답함과 설명 못할 감정들을 대신해서 느끼고 이해하고 싶어서 다른 이들의 글을 읽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일이 되고 일년이 지나 경험이 더 쌓이면, 아니면 우연찮게 내 마음을 알게 해줄 노래와 책, 영화를 접한다면 조금 달라질까.


중구난방한 보광동 답사기는 이쯤해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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