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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host Aug 13. 2023

성북동 답사기

성북동_안광일

성북동 달동네는 지나다니며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곳이었다. 대사관들과 고급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동네 한편에 달동네가 있는 풍경이 낯설었고 흥미로웠지만 막상 들어가 보긴 쉽지 않았던 동네였다.

그곳의 빈집을 고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분을 만난 덕으로 드디어 발을 들인 곳. 여기는 시간이 멈춘 동네였다. 한국전쟁 때 흘러 흘러 비탈면에 정착하고 살아간 사람들이 만든 동네. 가파른 경사와 계단, 앞에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걷다가 피해 줘야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 길을 따라 펼쳐진 갖가지 대문의 향연. 불가항력적으로 이주하여 자리 잡은 사람들이 터전을 잡으면서 도로는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최소한의 폭만 남기고 집을 지었으리라. 자연발생적으로 땅따먹기 하듯이 하나씩 늘어난 집들이 모인 이 마을은 그 좁은 길 때문에 시간이 멈춰버렸다.


한성대입구역에서 시작해 걸어 올라가기 시작하니 차량이 접근가능한 필지들은 이미 개발이 완료되거나 새롭게 단장을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저 산 위에 북악산로 밑으로는 대사관들과 고급 단독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사이에 섬처럼 고립된, 시간이 멈춘 마을. 가파른 골목길에 첫 발을 내딛으며 든 생각은 '대한민국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데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이 얼마나 특별한 역사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서울땅을 가만 두었겠는가. 분명 불가피한 이유가 있겠지'였다. 과거 길을 통행하는 최소단위는 사람이었기에 사람이 지나다닐 수만 있으면 집을 짓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차가 지나갈 수 없는 길은 길로 쳐주지 않는다. 건축법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차가 진입할 수 있는 도로변의 한 켜는 이미 옛 모습을 품고 리모델링해서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모하여 영업 중인 가게들도 종종 보였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달동네가 있으면 싹 다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었다. 원래 그곳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켜켜이 쌓아 올린 이야기들은 그렇게 한순간에 묻혀버린다. 전국의 수많은 골목길과 논두렁과 숲길과 들판의 이야기들이 그렇게 포클레인에 파헤쳐지고 콘크리트로 파묻혔다. 처음 성북동 빈집누님을 따라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과거의 장소들이 보통 대한민국에서 행해지는 개발의 방식이 아닌 다른 개발의 방법이 있을까? 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와 골목길을 돌아다녀보니 지금까지 미개발지역으로 남아있던 이유들이 이해되었고 다른 대안에 대한 희뜩한 아이디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미개발지역의 환경개선에 대한 획기적인 대안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나에게 약간 실망을 했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빈집 중 비워진지 시간이 오랜 집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식물로 뒤덮여있었다. 그랬다. 전쟁 후 피란민들은 살기 어려운 비탈면에 터전을 잡고 정착했다. 그만큼 절박했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런 불편을 감수해 가며 어려운 환경을 선택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들은 많지 않다. 기왕이면 편리를 좇기 마련이니 예전에 필요로 지어졌던 집들은 빈집이 되어간다. 그리고 사람이 떠난 집은 식물이 다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식물들이 자리를 잡으면 자연히 곤충과 새들도 그곳을 자신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자리 잡기 시작할 것이다. 삶에 절박한 이들에게 잠시 자리를 내어줬지만 그곳은 원래 자연이 있던 곳이었다. 대한민국의 여느 도시가 자연이 아니었던 곳이 없겠지만은 인구도 줄어가고 기후위기가 본격화되는 이 마당에 비워져 가는 동네를 다시 개발해서 살리기보다는 바닥의 콘크리트를 깨서 나무가 빨리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 주는 게 더 자연스럽고 옳은 방향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서 쫓겨나 살기 위해 산의 식물과 동물들을 쫓아내고 자리를 잡고 살았으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원래 살던 식물과 동물들에게 땅을 돌려주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억지로 개발논리를 만들어 일부 금융자본과 개발업자의 이익을 만들어주는 것도, 이 모습을 박제해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것보다 그게 합리적인 생각인 것 같다.


*Chat-GPT한테 post development의 관점에서 슬럼화되는 도시를 해체하여 자연으로 되돌리는 것에 대한 정의를 해달라고 물으니 De-slumification라고 답해준다. De-slumification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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