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acehost Aug 27. 2023

낭만과 현실 사이.

충신동.창신동_이관석

1. 성벽 사이를 두고 나란히 자리한 충신동과 창신동.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다 15년 전에 걸었던 이스탄불의 테오도시우스 성벽 부근이 떠올랐다. 도시의 멸망이 한 국가의 멸망으로 이어지고 다음 국가의 수도로 다시 우뚝 선 그 날을 기억하는 그 성벽. 2008년 여름, 20대의 나는 그 역사적 순간을 고이 간직했을지 모를 그 성벽이 꼭 보고싶어 이스탄불에 1주일을 넘게 머물며 하루는 북으로, 하루는 남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일정을 정해두고 한국을 떠났다.

20080828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마주한 슬럼가
20080828 눈을 마주쳤을 땐 손을 흔드셨지만 카메라엔 뒷모습만 남아있다

2. 트램 역에서 내려 정문을 마주했을때만 해도 사람을 압도하는 웅장한 삼중성벽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지만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길수록 도심에서 밀리고 밀려나 벽의 끝까지 내몰린 사람들을 만난다. 성벽 바깥은 씽씽 달리는 고속도로와 새로운 건물들이 늘어서 어서 오라는 듯 손내미는 것 같지만 벽이 주는 무력감은 물리적인 인 단절 이상으로 느껴지곤 했다. "이걸 보러 한국에서 왔다고?"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에서 통하지 않는 말을 넘어선 또 다른 무력감에 짓눌렸다.

20230712 보이지만 허락하지 않는,
20230712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긴 어려운,

3. 판자촌이 헐리고 골목골목 들어선 다세대주택, 아파트 세상과 종로의 몰락으로 뜸해진 발걸음이 한양도성이 힙한 관광지가 되어 변화한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도시는 관광지로 홍보한다. 이제 와서 성벽을 둘러싼 마을들에게 성벽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렇게 가꾸고 홍보하며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던 사람들은 있었을까. 우리는 또 그저 아직 못가본 곳에 대한 낭만 하나하나를 이 곳에 버리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한 없이 좁은 골목을 걷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드넓은 단절의 거리.


20230712 소곤소곤. 사람이 살고 있어요.

230812. 글, 사진 관석




Copyrightⓒ. 공간주.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과 장소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