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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host Sep 04. 2023

틈바귀 생명들

충신동.창신동_정창윤

이화동과 창신동의 골목은 성북동과 마찬가지로 처음 걸어보는 길이었다. 수십 년을 서울에서 살아왔지만 아직도 모르는 길이 많다는 사실이 즐거움과 자책감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자기가 살아온 도시의 모든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걸으며 마주치는 예상치 못한 연결과 막힘을 바라볼 때마다 생경함이 느껴졌다. 내 주변은 그동안 얼마나 빨리 그리고 많이 변해왔는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몇 십 년 동안 큰 변화 없이 머물러 있는 길 위의 공간들을 망각하며 살아왔나 보다. 어릴 때는 흔히 볼 수 있었던 대충 만든 콘크리트 경사로, 애매한 블록 돌담, 갑자기 막히는 샛길, 왜 존재하는지 알 길이 없는 사다리. 그것들의 주변에서 잠시 머무르듯 살다 간 사람도 있겠고 아직 계속 살아오고 있는 이도 있겠지만 저마다 아직 나름의 쓰임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화동과 창신동 골목에는 구석구석 뿌리내린 풀뿌리 생명과 역사가 숨쉬고 있다.


재개발이라는 단어 하나에 많은 가치와 철학, 이해관계들이 오가겠지. 물론 안전의 문제가 우선 되어야겠지만 그래도 오래된 동네를 살아온 사람들의 눈 속에 켜켜이 쌓이고 아직 기록되지 않는 동네의 기록들이 기계들로 한 순간에 헤집어지는 것에는 재화를 매길 수 없을 정도의 손실이 크다. 부동산 성공의 신화 아래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으면서 얻었다 착각하고 사는가. 창신동의 오래된 돌담에 생긴 작은 균열에도 풀꽃이 피어있다. 집값을 걱정하며 오르내리는 언덕 사이사이에는 무심코 지나치는 나무들, 시끄럽다만 생각하는 직박구리의 울음소리,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꽃을 향해 날아가는 배추나비들이 있다. 이 모든 생명들은 집값 상승을 위해서 갈아 엎어져 철저하게 용역비가 계산된 마스터플랜의 공원과 정원으로 대체될 것이다. 재개발 신화에서 나무와 꽃, 새, 곤충들은 생명이 아니다. 어딘가에 모아서 버려야 하는 돈이 나가는 폐기물일 뿐.


콘크리트와 금속으로 쌓아올린 도시 비탈면을 무심히 지나치는 사이에도 배롱나무는 꽃을 피운다.

동물도 식물도 자리잡을 틈바귀가 있으면 자리를 잡고 살아가며 주변과 조화를 맞춘다. 틈바구니 인생을 견디지 못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환경을 뒤엎는 생물은 오직 우리 인간뿐이다. 더 높은 아파트, 더 편한 도로, 더 비싼 땅값을 바라며 오늘도 서울의 틈바귀 창신동 언덕의 사람들은 재개발을 바란다. 이 모든 생명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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