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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host Sep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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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동.창신동_안광일

2023. 7. 13

며칠전부터 전국적인 집중호우로 여러 지방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당일도 집중호우가 예보되어 긴장하던 날이었다. 예상보다는 비가 적었지만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동대문역에 내려 창신 골목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봉제산업에 관련된 가게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고 자재들을 부지런히 나르는 오토바이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목적지는 카페 낙타. 본래 한성대입구역에서 출발하여 낙산을 넘어 동대문까지 오는 답사계획이었으나 나는 집중호우 예보 때문에 아이들을 차로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뒤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거꾸로 올라가고 있었다.

골목시장을 지나자 성북동에서 봤던 것과 같은 좁고 가파른 골목길이 등장했다.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이렇다할 배수시설은 설치되어 있지 않았지만 경사가 가팔라 길을 따라 빗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집을 길보다 낮게 지었다간 당장에 물난리가 날 것 같았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차들이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나왔다. 창신동은 성북동과 달리 도로 중간중간 공영주차장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오래된 도심지역은 그곳이 생겨날 때 자동차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도로나 주차장 편의시설같은 공간에 대한 고려없이 길들과 건물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문화가 점점 발전하면서 도시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기반시설과 그 기반시설을 넣기위해 필요한 공간들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진다. 도로에 자동차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도로의 폭은 더 넓어져야 했고 주차를 위한 꽤 넓은 공간도 필요해졌다. 넓어진 도로 밑으로는 상하수도, 인터넷 등의 각종 선로들이 깔리고 도로 위로는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 분리수거된 재활용품 등이 수거된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먹고 싸고 난방을 하고 그로부터 잔여물이 나오고 하는 것들이 자연의 순환체계와 같이 작동하여 폐기물이 없는 생활이 가능했지만 도시의 높은 밀도에서는 그러한 삶의 방식이 불가능하기에 도시기반시설인 파이프라인을 통해 물과 에너지를 공급해주고 배설물과 폐기물을 수거해간다. 그리고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는 그러한 기반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기본값이다. 지금 기후위기로 인류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때에 어느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창신동은 나름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여 도로를 넓히고 공영주차장을 확보하고 공공시설들을 확충하는 등 공공에서 노력을 한 것 같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와중에 옆에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놓여져있는 놀이터가 보였다. 좁은 길을 따라 건물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는 중간에 확 트인 공간과 이질적인 모습의 커다란 조형물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 콘크리트 덩어리를 봤을 때는 못쓰는 창고를 놀이터로 리모델링한 줄 알았으나 가까이 가서 안내문을 보니 봉제공장이었던 지역을 표상하는 골무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건물이었다. 리모델링한 것이 아니라 약간 실망하였으나 예기치 못하게 마주한 오픈스페이스와 재미있는 건물은 참 잘 만든 공공건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힘을 내 올라가니 카페 낙타가 보였다. 카페 낙타는 멀리서 봐도 범상치 않은 건물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조형적으로 굉장히 명쾌하게 지어졌는데 사각막대 두개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건물로 막대 하나는 길게 세우고 다른 막대는 눕혀서 긴 세로막대에 끼워넣은 모양이다. 세로막대는 수직동선이고 가로막대는 카페 겸 전망대다. 건물의 쓰임에 맞게 매우 심플한 모양으로 간결하게 잘 만든 건물처럼 보였다. 검색해보니 조진만 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를 했다. (골무모양 놀이터도 마찬가지로 조진만 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했다) 카페에서 일행을 만나 짧은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을 나누고 다시 골목시장으로 내려와 칼국수를 먹었다. 시장의 좁은 칼국수집은 정말 오랜만이다. 비오는날 칼국수는 안좋을 수가 없다.


2023. 8. 11 

한반도 내륙을 관통한 태풍 카눈이 태풍으로서의 일생을 다하고 마지막 비를 뿌리고 있는 날 아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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