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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host Oct 02. 2023

그때 우리는 다 이런 곳에 살았다.

한남3구역_변유경

더위가 한풀 꺾였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일요일. 우리가 한남동에서 만난 건 이날 늦은 오후였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오산이었다. 2시간 가까이 한남동 지역을 오르며 내리며 땀이 너무 많이 났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게도 옷은 많이 젖어버렸고 또 그만큼 나의 첫 답사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한남동을 부자 동네로만 알고 있었다. 이태원에 올 때면 숨어있는 맛집과 카페를 찾아 대사관과 저택이 즐비한 골목을 지나치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 발견한 한남동은 맛집과 이색적인 카페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사진1] 한남3구역의 어떤 골목. 집의 대문마다 번짓수를 알리는 팻말이 걸려있다. ©이관석


먼저 답사한 한남3구역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군데군데 보이는 쿠팡 로켓프레시 박스만이 누군가 살고 있다는 걸 암시했다. 쿠팡맨이 이런 구석까지 올라오다니 주소가 없어 보이는 대문 하나하나에 번지수를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긴 하지만, 최근에 정비된 듯한 시멘트 계단이 아주 번듯했지만, 매미 소리만 울릴 뿐, 사람의 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진2] 한남3구역에서 마주한 수많은 길냥이중의 하나. ©이관석


사람보다 더 자주 마주친 건 길냥이들이었다. 하얀냥이, 검은색과 오렌지빛 냥이, 어린냥이, 어린냥이들을 품고 있는 어미냥이. 행여 우리가 자기 먹이를 빼앗아 갈까 봐 거리를 두고 높은 곳에서 지켜보는 노란냥이까지 다양했다.


사람이 없는 빈집은 초록색 풀들이 금방 뒤덮은 모양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이렇게나 빨리 자연에 회복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이 거주하는 집은 자연의 입장에서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했던가. 사람이 떠나간 자리도 아주 고약했다. 뼈대만 남은 빈집의 바닥은 진흙탕이 되어버려 있었다. 쾌쾌하면서도 무언가 썩는 듯한 냄새가 나로 하여금 불쾌함을 일으켰다. 그래도 이곳은 누군가에겐 편안한 잠자리였을 거다. 다닥다닥 붙은 담벼락을 넘어 앞집 뒷집의 소식을 듣고, 아이들이 오르며 내리며 뛰어노는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도시 정비 사업 역사상 이견 없는 재개발 최대어인 한남3구역. 축구장 50개 크기 면적, 아파트 동만 197개, 총 5,816세대, 사업비 3조 원 규모 등 어떠한 수식어가 붙어도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용산구에 속한 한남뉴타운은 입지적 장점으로 부동산 최상급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남3구역을 지나 한남2구역, 그리고 보광사를 찾으러 한남4구역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한남3구역으로 돌아왔다. 한남뉴타운 개발 지역 중 한남3구역은 가장 면적이 넓으며, 그만큼 경제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관리처분인가가 난 뒤에는 이주, 철거를 거쳐 착공만 남겨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한남3구역 조합 관계자는 빠르면 오는 10월 이주가 시작될 것이라면서 이주가 완료되는 대로 철거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10월부터 이주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쿠팡에서 로켓을 주문하는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사진3] 어렸을 적 살던 동네를 연상시키는 시멘트 계단. ©이관석


나도 어쩌면 이런 동네를 떠난 사람 중의 하나일 거다. 동네를 돌아보면서 어릴 적 살았던 봉천동 골목이 기억났다. 그때는 아파트보다 주택이 더 흔한 시절이었다. 그때 동네 아이들과 같이 지나치던 담장이, 시멘트로 발라놓아 넘어지면 무릎이 깨지던 비탈길이, 그리고 도둑을 방지한다며 담장 위에 심어놓은 철심이. 그런 것들이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게 신기했다. 그때 우리는 다 이런 곳에 살았다.


“하지만 크게 오른 건설 공사비가 사업 진행에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한남3구역은 지난 2020년 시공사 입찰 공고 당시 고급화를 내세우며 3.3제곱미터당 공사비 598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2020년 당시에는 매우 높은 공사비 책정으로 화제가 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건설원자잿값의 인상으로 공사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한남뉴타운. 누가 봐도 상품성이 보장되는 지역. 개발이 되고 있지 않아도 거래가격이 꾸준히 상승한 지역.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고 실거주 및 보유에 일정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매매가 불가능하다는 고도로 관리되고 있는 지역. 하지만 실거주자들은 정말 이런 조건의 혜택을 보고 있을까? 미리 상품성을 알아본 사람들이 법적 조치가 시작되기 전에 집을 사서 주거지로 등록만 해놓고 개발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좋은 입지만큼이나 과거로부터 군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사연이 많은 지역. 그런 많은 역사를 간직한 이곳이 또 달라지기 전에 나는 오늘을 기록한다.


*인용: 매일경제TV뉴스. 한남3구역, 관리처분인가 획득 낮아진 공사비는 걸림돌’. 2023년 6월 23일. https://youtu.be/2Yg5ydK_JP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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