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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host Sep 24. 2023

갈림길 앞에 서있는 바람

한남3구역_이정옥

기사를 훑다가 이곳이 곧 재개발로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다시 이곳을 방문했다. 오르막길 오르기 직전 생명체 하나가 다가온다. 중턱을 오르니 또 다른 꼬물이가 멀뚱이 우리를 쳐다본다. 동네에 온기를 채우고 있는 것은 고양이들이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그저 제 몸뚱이 한 채 겨누고 있는 이곳저곳 실금이 생긴 건물들이었다. 

골목 어귀, 대문 틈으로 식물과 동물이 인간을 반겨준다.      

답사를 종종 다니면서 한 지역을 한 번만 가는 것이 아닌 여러 차례 걸어 다녀본다. 낙후된 지역의 첫 만남에는 으스스한 분위기에 어디로 갈지 모르겠는 미로 같은 골목에 자발적으로 갇혀보면서 재빠르게 그 지역에 동화되려 한다. 시간을 가지고 아주 천천히.. 마치 이 동네에 오래 산 사람처럼, 헤매는 행동과 표정은 숨긴다. 그래서 답사할 때는 웬만하면 휴대폰 지도 찾기에 의존하지 않는다. 복잡해 보여도 골목은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고 무조건 위로 혹은 아래로 내려가면 큰길이 나온다.       


골목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

[네이버 어학사전]      

   

       

두 번째 방문한 한남3구역(보광동)은 2020년 6월 21일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되면서, 2023년 10월부터 이주가 시작된다. 한남뉴타운이라 불리는 2,3,4,5 구역 중 3 구역은 대지면적이 제일 넓으면서 재개발 속도도 빠르다. 이제 이곳은 아파트가 심어진다.


비정형화된 집들을 보면서 작업에 영감을 받는다. 가끔은 예술작품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일 때도 있다. 박스 하나보단 박스들이 서로 엉켜있는 형태가 더 흥미롭지 않은가? 그리곤 박스들 안의 구조는 어떨지 아주 궁금해진다. 창의력이 쉴 새 없이 돌다가는 장소는 오래된 지역인 구도심이다. 제각각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길가 화분들은 자연친화적이기도 하다. 옥상에 걸린 다양한 색상의 천들은 바람결에 흔들흔들 하늘배경에 아름답기도 하다.            


고양이들의 눈인사를 받으면서 친구들과 골목을 휘젓는다. 이 동네가 처음 생겼을 때를 상상해 본다. 내 집이 생겼다고 좋아했을 사람들.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마주칠 수밖에 없는 골목 특성상 옆집 뒷집 건넛집까지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챙겨줬을 것이다. 상상의 끝에 선 나는 외로움과 쓸쓸한 공기만 마시고 있다. 감정에 늪에 빠지려는 찰나에 틈만 나면 또 까꿍! 하고 나오는 고양이들에 절로 ‘안녕~!’ 반갑게 인사를 한다. 


바람을 가로막는 아파트가 야속하다.

이제 진짜 안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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