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3구역_안광일
강남에서 한남대교를 건널 때면 왼편에 언덕을 따라 오밀조밀 모여있는 작은 집들을 마주친다. 학생 때 처음 그 풍경을 마주했을 땐 부촌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한남대교에서 보던 그 언덕길을 이번에 처음 올라가 봤다. 가파른 언덕을 조금 올랐을 뿐인데 뒤로 돌아서면 한강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이미 재개발이 확정되어 대부분 집들이 이주를 완료한 상태였다. 이 언덕은 몇 년 뒤면 힐스테이트라는 이름을 가진 비싼 금액을 치러야 살 수 있는 아파트 단지가 될 것이다. 아파트가 지어지면 다시는 보지 못할 풍경이 될 것 같아 언덕 위에서 보이는 한강의 풍광들을 사진 찍듯 눈에 담았다.
오래된 골목을 걷다 보면 색다른 공간감을 가진 곳들을 발견할 수 있다. 분명 계획 없이 집을 짓고 길을 내다보니 어쩔 수 없는 모양으로 저리 된 것일 테지만 매일 도시에서 정형화된 모습의 공간만을 경험하다 이런 공간을 맞닥뜨리면 설레는 감정이 든다. 특히나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는 나에게 있어서는 여러 모양의 공간을 경험하는 게 공간을 구상하고 설계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길을 걷다가 우연히 이런 곳을 마주치면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할 때 보물을 찾은 것 마냥 새롭고 신난다.
개인적인 공간 보물 찾기의 즐거움과 별개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답사를 다니며 관련 책들을 살금살금 읽어보며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하나는 이런 재개발 사업결과 용적률은 대폭 올라가지만 거주민의 숫자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단층 위주로 된 달동네는 용적률이 100%를 넘을 수 없다. 하지만 고층의 아파트로 개발되면서 용적률은 200~300%가 된다. 고층 아파트로 재개발하면 산술적으로 주거면적이 2~3배 이상 넓어지고 주거밀도도 올라가면서 거주민의 숫자도 많아질 것이라는 게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었는데 막상 재개발 전 후 거주민의 숫자를 비교해 보면 재개발 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수가 더 많다는 것이다. 개발 전 원주민들의 재정착률이 굉장히 낮다는 것은 이전부터 재개발의 문제로 지적되던 바여서 인지하고 있었으나 개발 전보다 밀도까지 떨어진다. 결국 돈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 살던 사람들을 밀어내는 꼴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밀려난 사람들은 고시원과 쪽방 등 비정상주거형태 또는 반지하 집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남동 재개발 구역은 대부분이 빈집으로 보였다. 여기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여기에 지어질 힐스테이트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게 될지는 알 것 같다. 한남동에서 한강을 조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 하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도 다른 사람을 주거지에서 쫓아낼 권한은 없다. 설사 그런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주거는 인권이기 때문이다.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면서 이름을 '오막'이라고 지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종종 오막이 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때면 오두막의 오막, 오막살이할 때 오막이라고 답한다. 오막은 방한칸과 부엌을 가진 최소의 집이었다. 현대적 기준으로 따지면, 현행 주거기본법상 1인가구의 최소주거면적은 14제곱미터다. 약 4평 정도 되는 공간. 방과 부엌 화장실이 딸린 작은 원룸정도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처음 건축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면서 오막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건축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가짐으로 출발했다. 가난한 마음으로 살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운영을 하려니 돈이 있는 곳 근처에서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오막의 이름이 가진 의미를 되새기며 나는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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