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마을_정창윤
마을버스의 종점까지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개미마을의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내고 있는 마을 여기저기에서 하얀 수증기가 피어났다 사라졌다. 차가 양쪽 방향으로 간신히 다닐 수 있는 도로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가파르게 올라야 하는 언덕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집들. 빛바랜 모습마저 아름다운 나무들은 인왕산 자락과 연결되어 있고, 마을의 유일한 도로 끝은 이곳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아파트 단지를 향해 뻗어 있다. 이곳이 저 호화로운 동네보다 더 높이 위치하고 있지만 서울이란 도시의 역사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삶의 변곡점으로 느껴졌다.
한국전쟁의 피난촌. 무작정 상경한 젊은이들의 터전. 서울에 남겨진 마지막 달동네. 집집마다 화장실이 따로 없어서 공중화장실을 사용하고 도시가스가 연결되지 못해 연탄과 등유로 매 겨울을 보내는 곳이 이곳 개미마을이다. 매년 버티듯이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마을에 같이 머무는 생명들의 모습도 오늘따라 더 처연해 보인다. 그 처연한 속에서도 생명의 빛은 아름답고 선명하다. 겨울빛을 담아 빛바랜 아름다움을 보란 듯이 뽐내고 있는 풀꽃들과 나무들은 도시의 인간이 만들어내는 서사의 희생양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지긋이 바라보면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인간의 지혜는 사실 진리의 겉핥기일지도 모른다. 적당히 찬 바람을 손 끝에 걸고 올라온 언덕을 일행들과 같이 다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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