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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wave Aug 03. 2018

아직도 60만원 인생

출근길 JOB 생각 .29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학벌도 변변치 않고 딱히 잘할 줄아는 것도 없는 문과생인 나는 미생의 장그래처럼 인턴 사원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내가 입사한 회사는 요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는 업계에 막 발을 들인 신생회사라 직원 평균 나이가 20대 후반으로 대부분 직원들이 젊었다.


전역 후 나이와 상관없이 막내로 입사한 나는 여러가지 잡일 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업무가 수시로 떨어졌는데 일을 잘 못해서 인지 아니면 내가 마음에 안들어서 인지 보고할 때마다 매번 나보다 1살 많은 팀장에게 깨지곤 했다. 그것도 회의실이나 탕비실 같은 조용히 1대 1로 질책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뻥뚫린 사무실 한 가운데에서 말이다.


보고가 끝나고 나면, 아니 정확히 말해 깨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겠거니 자책하며 화장실에서 찬물 세수로 붉어진 눈시울을 감춰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일하던 당시 내 인턴월급은 60만원. 회사에서 나는 그저 60만원 짜리였다.


내 수준의 능력으로 이마저도 짤리면 더이상 갈 곳이 없는 절벽같은 상황이라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였다. 그래서 나는 단 한번도 정시에 퇴근한 적이 없었다. 그때는 그게 열정이라 믿으며 나를 부채질 했다.

새벽 5시 40분에 시작한 영어수업이 끝나는 대로 회사로 달려갔고 그 시간은 아침 7시 내외였다. 그렇게 일을 시작해 밤 11시에 같이 일했던 직원을 택시 태워보내고 막차에 몸을 실어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 이후로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 보다 월급은 올랐지만 여전히 나는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고 있다. 팀장에게 깨지는 것도 여전하고 깨지고 나면 사무실에서 벗어나 한숨쉬며 자책하는 것도 똑같다. (달라진게 있다면 이제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계속 모니터만 보다 생긴 안구 건조증 덕분인 듯)


아직도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내며 점점 더 나아질 꺼라는 희망을 품고 산다. 열받을  때 웃는 것이 직장생활이라고 했던가. 지금도 여전히 나는 60만원 인생을 살고 있다. 월급은 올랐지만 직장생활은 변하지 않는다. 월급이 얼마가 되든 직장은 직장이다. 인턴이든 대리든 과장이든 차장이든 모두 60 만원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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