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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wave May 26. 2020

꼰대의 말하기

출근길 JOB 생각 .62

팀장이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모시던 팀장이 다른 부서로 부서 이동을 했다. 수개월 동안 나를 괴롭히던 그 꼰대 팀장이 말이다. 부서 이동이 발표 나던 날, 본인도 좋아했고 나를 포함한 팀원들도 기뻐했다.


원래 기술직 출신이었던 그는 지난 2년간 기획팀 부서로 일하면서 많은 고통을 받은 모양이었다. 딱히 능력은 없었으나 진급 욕심에 기획부서로의 이동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 승진을 위해 쌓는 테크트리랄까?


그러나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상명하복이 중시되는 기술직과 달리 제멋대로인 기획팀의 인원들이 그는 늘 불만이었다. 같은 업무를 분담해서 하는 기술팀과는 달리 기획팀은 다 개별 프로젝트를 따로 진행하고 있어 모든 게 혼란스러웠으리라.


결국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 그가 꺼내 든 카드는 강경책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펜치로 머리를 때렸다느니 인두로 머리를 지졌다느니" 하는 위협적인 말을 섞어가며 본인의 말을 듣게 하려 했다. 특히나 그에게는 대표적인 본보기가 필요했는데 때마침 경력직으로 막 입사해 회사 상황을 잘 모르는 내가 적격이었다.


거두절미하고 입사 6개월 만에 화장실에서 3번 울었다. 30대 후반의 가장이자 대한민국 군대를 만기 전역한 병장이자 얼마 전 공황장애를 겪고 이직한 직장인이었던 나였다. 그때 당시 도망갈까 다시 이직을 할까 고민도 했지만 공황장애로 몸상태가 좋지 않았던 터라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버티고 버텨 2년이 흘렀고, 모난돌이 정 맞는다고 했던가. 나를 괴롭히던 그 팀장은 여러 가지 일을 겪고 나서 버티지 못하겠는지 원래 있었던 기술부 서로 옮기게 되었다. 본인이 막말을 한 이유는 너 잘되라고 라는 말 같지도 않은 드립을 했던 말이라며 그가 떠나는 날 나에게 조언이랍시고 몇 마디를 더 던졌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시키는 대로 해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아무 문제도 없는 일들을 딴짓을 해서 일들이 어긋난다고 했다. 그러나 시키는 대로 일해서 잘못되면 결국 꼬리 자르기 하는 것은 늘 본인이었다.


2. 가만히 있어라.

그가 나를 괴롭힐 때면 이직을 할까, 나가서 사업을 할까 참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그는 딴생각 말고 여기서 있으라 말한다. 밖을 지옥이라며. 본인은 악마면서


3. 생각하지 말아라.

길게 생각할 필요 없다. 단순하게 해라.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데 네가 뭐가 힘드냐? 네가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일이 뭐가 있냐. 그냥 하던 거 해라. 그러면서 본인은 아이디어랍시고 시답잖은 거 계속 던지며 시킨다.


결론은 너는 나보다 힘든 일이 없으니 그냥 일이나 해라다. 이럴 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이다.


나는 꼰대라는 단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정립된 사람. 그로 인해 삶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주관적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고 본다.


다만 자신의 경험을 마치 전부인 것처럼 포장하고 남들에게 세뇌하려고 하는 그 태도가 참 별로다. 어차피 본인 경험과 인생관은 수십억 명의 사람들 중 하나 일뿐인데 그것을 조언이랍시고 떠드는가.


꼰대가 되더라도 겸손한 꼰대가 되자. 나는 그런 꼰대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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