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JOB 생각 .25
군시절 선임들의 말 중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말이 하나있다. 자대배치 받고 도착한 내무실에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각잡고 서있는 나에게 분대장이 했던 말이다.
"야! 신병. 쫄지는 말고 긴장하고 있어."
군생활을 하는 동안 계속 곱씹어보게 되는 말이었다. 쫄아있는 것과 긴장하고 있다는 말은 같은 뜻 아닌가? 그게 그 말 같은데? 쫄아있는 것과 긴장해 있는 것은 무엇으로 구분한단 말인가?자신감의 차이를 말하는 건가? 쫄지는 않았지만 긴장은 하고 있는 미묘한 경계의 상태. 그 이후 이 둘의 차이를 군생활 동안 구분하는 게 나의 목표였다.
요즘 회사에서 내 주업무 중 하나는 주간리포트다. 매주 현황을 정리해 팀장, 부장을 거쳐 대표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간다. 어느날 늘 하던대로 보고서를 작성하며 팀장에게 설명하고 있는데 팀장이 갑짜기 화를 내며 말했다.
"너는 왜 주간보고에 현황만 보고하냐. 하락했는데 뭐 어쩌라고?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대책이 있어야 할 것 아니야."
듣고 보니 맞는 말이였다. 맞아. 대안이 있어야지. 그래서 그 다음주에는 현황과 함께 우리가 취해야 하는 액션사항을 같이 적었다. 되도록 뜬구름잡는 말이 아닌 실현 가능한 내용으로 구성했다. 그러자 이번에 또 팀장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왜 쓸데없이 일을 만드냐. 이렇게 보고 하면 대표가 또 이거 하라고 일을 시킬 것 아냐. 현황만 남겨놓고 대안은 다 지워."
"..."
아... 어쩌란말인가. 고민 또 고민했다.
그래서 그 다음주는 대표님과 부장님 보고서에는 현황만 작성하고 대안은 팀장이 보는 보고서에만 수기로 적어 드렸다. 그러자 그제서야 만족하는 팀장. 부장과 대표의 보고서에는 없지만 본인의 보고서에만 적혀있는 내용으로 주간보고를 무사히 마쳤다.
쫄아있는 것과 긴장하는 것의 경계선처럼 직장생활은 의미가 중복되는 지시가 많이 떨어진다. 처음에는 이랬다가 다음에는 저랬다가. 그 중첩되는 경계선 사이에서의 미묘한 늬앙스를 알아차리는 게 직장생활 10년이 지난 지금도 참 어렵다. 마치 외국어로 대화하는 느낌이랄까?
그 미묘한 경계선의 줄을 잘 타는 것이 직장생활을 잘하는 노하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