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기보다는 문화적 향유와 쓰는 과정에 집중하자!
S와 W, 결혼 16년 만에 처음으로 맞벌이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W와 S도 결혼 당시 맞벌이로 시작해 결혼 16년차인 지금도 맞벌이를 하고 있다. S는 사회교육복지단체에서 15년째 일을 하고 있다. 중간중간 육아휴직으로 쉬고 이직 후 쉰 기간을 빼고는 지속적으로 일을 해 온 셈이다. W는 결혼 후 약 2년간의 실직 기간을 빼면 13년째 사회복지단체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S : 우리, 결혼 15년 내내 맞벌이를 해왔네. 난 맞벌이에 대한 힘든 기억이 더 많아. 아이들이 1, 2살 때는 일을 하면서도 육아와 가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어. 일하고 들어와서도 집안일들이 산더미처럼 끝도 없이 펼쳐지는데, 그게 다 엄마 몫이라고 당연하게 여겼고, 나 혼자 그걸 해내다 녹다운이 됐었어.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든 기억밖에 없어.
W : 그때 많이 힘들었지. 신혼 초에 힘들게 일을 하면서도 부부싸움도 많이 했었어. 나도 일하면서 서로를 격려해주지 못했던 게 많이 후회돼. 그땐 맞벌이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육아는 당연히 엄마 몫이 더 크다고 생각했었어. 그게 당신한테 큰 부담을 줬을거라는 것도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보네. 나도 아빠 역할도 가사일도 서툴렀고, 당신한테 더 많이 의존했던 거 같아.
S : 지금이라도 내 심정을 이해해주니 다행이다~난 신혼초 맞벌이 시절을 떠올리면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와서도 끝도 없는 일을 하면서 늘 행복하다는 느낌보다는 왜 이렇게 불행한 선택을 하고 있지 하는 질문을 품고 살았던 거 같애. 같이 고생을 하며 일을 하는데, 늘 혼자서 버둥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컸거든.
W : 당신 혼자라는 느낌이 컸구나. 어떤 점이 그렇게 불행하다는 느낌으로 남았었어?
S : 밤에 아이들 재우는 것도 내 몫, 일 나갈 걱정을 하면서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밥을 하는 것도 모두 내 몫이었으니까. 당신은 간난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서 노력하지도 않았고, 쿨쿨 딴 방에서 잠만 잘 자더라. 아이가 똥 싸서 기저귀 가는 것도 당신은 더럽다고 안했었어. 모유는 내가 먹인다고 해도, 기저귀 가는 것 정도는 당신이 아빠로서 당연이 육아의 한 과정으로 참여해주기를 바랬었는데. 내가 당신에게 정식으로 요청하지도 못했고, 가사와 육아를 제대로 분담하지도 못하면서 당신에게 불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었어.
W : 신혼초 맞벌이 하면서 내가 기저귀도 갈고, 육아도 가사일도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S :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기뻤겠지. 서로 의지하면서 힘든 일을 함께 한다는 느낌으로 버텼겠지. 여자는 작은 거 하나에 감동받거든. 남편이 내 맘을 알아주고 미리미리 내 힘든 것을 알아차려주고 함께 한다는 거만큼 기쁜 일이 또 있겠어?
W : 맞벌이 이야기하다가보니 당신은 육아 가사전담반 애로사항이 제일 컸네. 지나간 일이지만, 그땐 나도 당신도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 서툴렀던 거 같아.
S : 맞아. 나도 당신과 일을 나누는데 서툴렀었어. 화내고 짜증내고 닥쳐서 쿵쾅거리면서 내가 다 해버리고 말이야. 어떤 면에서 나도 잘 한 거 없지. 남편 기도 살려주고 칭찬도 해주고 하면서 했어야 했는데. 늘 불만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었으니까. 난 당신이 내가 말하기 전에 가사일을 척척 알아서 해주기를 바랬는데, 남자들은 말을 안해주면 잘 모르는 것 같아.
W : 변명 같긴 하지만, 남자들이 그런 능력이 좀 떨어져. 알아서 척척 하는 거. 그런 점에서는 남자들도 생활 민감성을 키워야겠지. 그런데, 내가 알아서 해도 당신이 만족을 못한 적이 많았어. 내가 설거지라도 알아서 해주면 당신이 뒷정리하면서 더 씩씩거리면서 화내고 그랬었잖아. 뒤처리 일이 더 많아진다면서.
S : 그러게. 당신이 알아서 집안일 해줄 때도 넓은 아량으로 품어주고 칭찬해줬어야 하는데, 성에 안차는 게 내 눈에 먼저 보였어. 그 점은 내가 부족했던 거 같아. 그건 그렇고, 당신은 맞벌이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어떤 것들이 있어?
W : 이제껏 아이들 키우면서 저축하고 경제적으로 함께 살림을 꾸려올 수 있었던 거. 그거에 만족해. 경제적 의미가 크지. 나랑 당신이 함께 맞벌이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겠어?
S : 맞벌이를 하면서 수입도 늘지만, 지출도 만만치 않게 커졌던 것도 있었지. 그래도 아이들교육비도 그렇고 집수리비도 그렇고, 그때그때마다 굵직한 지출들도 많았는데 그걸 다 감당하고 여기까지 왔네.
W : 그러게. 맞벌이 부부라서 가능했던 일이야.
S : 그래. 맞아. 맞벌이 좋은 점은 함께 번다는 거지. 내가 중간에 일 안하면서 집에서 쉴 때도 있었는데. 난 집안일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크다는 걸 알게 됐었어. 집안일만 할 때도 즐겁긴 했지만, 사회에 나가서 일할 때 더 큰 인정 욕구가 생기고 돈 버는 재미도 쏠쏠했거든.
W : 맞아, 당신은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싶어 했고 그만큼 경력도 있어서 지금도 일할 수 있는 거야. 그 점에선 당신이 능력 있다는 거니까 당신 스스로 자긍심 가질만해.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니까 이젠 엄마 손을 벗어나 자기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신혼 때 보다 맞벌이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지금이 더 여유롭다. 그치?
S : 시간이 준 선물이지. 그동안 우리도 많이 성숙해졌으니까. 그동안 맞벌이하면서 잃어버렸던게 더 많고 힘든 기억이 더 많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얻은 것도 많네.
W : 응. 요즘엔 같이 번 돈으로 저축도 하고, 아이들하고 여행도 좀 다니고 문화적인 향유도 좀 하고 싶고 그래.
S : 문화적인 향유? 어떤 게 제일 하고 싶어?
W : 집에 들어가면 평안한 느낌을 갖고 싶어. 15년간 쌓아두었던 많은 물건들을 정리해보고 싶어. 주방에 가득가득 차 있는 쓰지 않는 식기들을 다 처분하고 싶어.
S : 아, 그래? 나도 미니멀리즘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 목록부터 적어보자. 어떤 게 있을까?
W : 주방 식기 정리, 옷장 정리, 책장 정리부터 시작해보자. 결혼 15년 내내 쌓아두고 이고 지고 살아왔던 것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기회로 삼아보자.
S : 그래,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들부터 해나가면서 차근차근 해보자고~
작은 딸램 : 엄마, 아빠, 근데 우리 집엔 왜 가족사진이 없어? 친구들 집에 가면 가족 사진이 있던데. 너무 행복해보여. 우리도 그런 거 하나 찍어서 마루에 걸면 어때?
S : 좋지. 다음 주에 우리 가족 패밀리 룩으로 옷 맞춰 입고 풍경 좋은 곳에 가서 삼각대 하나 놓고 자연스럽게 가족 사진 하나 찍어보자. 어때? 좋지?
맞벌이에 관한 부부 토크는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해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작은 딸이 가세해서 우리 집안의 문화적 활동으로 가족사진을 찍어보자는 제안도 덧붙여졌다.
맞벌이라는 경제 공동체로 시작된 우리 부부의 힘든 노동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힘들었던 시절을 지나온 것처럼 한숨을 지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힘든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여유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우리 부부의 맞벌이가 경제적 공동체로서의 의미가 크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을 돌아보고 함께 향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밥벌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 부부는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잘 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맞벌이, 벌이보다는 쓰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맞벌이의 성과물을 가족과 함께 누려야 한다는 것도, 가족과 함께 문화적으로 향유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임을 알게 됐다. 그것이 맞벌이라는 힘든 터널을 지나서 깨우친 소중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