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3D 장편 애니메이션 <아야와 마녀>
6년 만의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이 발표되었다. 소위 '지브리 감성'으로 불리던 독보적인 브랜드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대중들의 막연한 상상과는 달리, 놀랍게도 지브리는 '3D'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앞세웠다. 그간 2D를 고집하던(특히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경우, 콘티 대부분을 손으로 그린다고 알려져 있다) 스튜디오의 기본 신조를 흔드는 일이었다.
이러한 지브리의 행보가 이해가지 않는 일은 아니다. 그동안 지브리가 고수해오던 셀 애니메이션 기법의 경우,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관여해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상당한 제작기간과 인건비가 소요된다. 일례로 최근작 중 하나인 <가구야 공주 이야기>(2014년 국내 개봉)는 8년이라는 제작기간으로서는 최장시간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스튜디오 재정악화에 영향을 주게 되며, 더 나아가 스튜디오 존속을 논의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14년 지브리 스튜디오는 제작팀을 해체한 뒤, 그동안의 작품 저작권만을 관리하겠다고 임시 선언한 바가 있다. 때문에 기존의 전통적인 작업방식에서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지브리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왜 하필 전면 3D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토이스토리>를 필두로 <벅스라이프>, <라푼젤> 등 디즈니와 픽사가 선보였던 3D는 기존 애니메이션 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왔고, 남다른 성공으로 평가되었다. 특히나 <업>의 경우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마 이때부터 '3D'라는 것은 애니메이션 업계에 있어서 이룩한 혹은 이룩해야 하는 '진보'의 상징이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사전에 기재된 '진보'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진보 進步
1.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
2.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
고도로 발전된 최신 작법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3D는 기술적으로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과연 예술적으로도 수준이 나아졌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반대로 그럼 2D는 예술적으로 뒤쳐지는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후자에 대한 대답은 지금까지 지브리가 선보였던 2D 작품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의 작품은 기술을 뛰어넘어, 현대 관객들에게까지 가닿을 수 있는 수준 높은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 KBS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는 다큐가 방영된 적이 있다. 단편 <털벌레 보로 毛虫のボロ>을 통해 처음으로 3D팀과 협업하게 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는데, 그중 지브리 색깔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컴퓨터를 통해 자동적으로 계산되어 움직이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며 하야오는 이러한 말을 한다.
"아기들은 고개를 저렇게 날카롭게 돌리지 않아요…(중략) 역시 기본적으로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모든 게 새로우니까. 문화적 충격인 거죠."
컴퓨터로는 예측이 불가능한 아이의 움직임. 바로 이러한 점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던 것이 '지브리 감성'의 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지금의 <아야와 마녀>는 그저 컴퓨터 기술로 그려낸 다소 기계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심지어 왜 이 스토리에 3D 기술을 적용해야 했는지에 대한 의도조차 찾기 힘들다. 그저 3D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스튜디오에서 준비하던 차기작 스토리가 <아야와 마녀>이기 때문에 한 것 같다는 이질적인 느낌까지 들 정도이니 말이다. 무조건 2D를 고수해 달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손으로 한 땀 한 땀 그리던 시절처럼 지브리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3D 기술에 투영될 수 있어야 하며, 결론적으로는 컴퓨터 기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애니메이터의 연출력의 진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변화하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앞으로의 지브리 스튜디오가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장면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식욕까지)을 흔들던, 지브리의 감성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