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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Oct 31. 2023

3無 엄마, 유기농인가요?

내게 너무 버거운 엄마라는 역할


누군가를 돌보고 키워내야 하는 엄마라는 역할이 버거울 때가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유독 힘에 부쳐하는 걸까. 겨우 초등 아이 하나 키우면서 엄살이 과하다. 나만 빼고 모두 쉽다. 순하던 꼬마가 야무진 초등학생이 되었다며 이런 애 하나 키우는 엄마는 뭐가 힘들겠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래, 어릴 땐 순했고 지금은 야물다, 인정. 그래서 더욱 이해 불가다. 이놈의 육아는 왜 해도 해도 제자리일까. 어쩜 이렇게도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혹시 이건 나의 문제일까. 나에게는 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세 가지 있다. 타인에 대한 관심, 기억력, 고민. 결혼 이전에는 이런 것들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도 모르고 그저 나의 기질, 성향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다 보니 나의 3無들(타인에 대한 관심, 기억력, 고민)이 매 순간 부족함이 되어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남들은 당신에게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이 들어본 이야기인가. 남의 이목에 신경 쓰기보다는 나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래서 인생의 많은 고민들이 싹도 틔우지 못한 채 사라졌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신경을 덜 쓰는 타인에 가족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 육아를 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럼 아이에게 무관심하다는 건가요? 그 반대다. 아이는 태어나 가장 많은 관심을 가져본 타인이었다. 타인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그 행동과 표정을 이해하는 과정들이 마치 처음 해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심지어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가 하는 말들과 표정, 행동의 의미들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엄마의 역할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 왜 아무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나 원망이 들었다.  

뭐가 없어서 좋은 건 유기농뿐인가. 출처: 픽사베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하교 시간은 왜 매번 다르고 챙겨야 할 것은 왜 이리 많은지. 자꾸 하교 시간에 늦고 챙겨야 할 것들을 잊어서 고민상담을 했더니 메모를 활용하고 알람을 맞추란다. 메모를 써놓은 것은 잊고 알람은 잘못 맞추었다. 모든 것이 핑계라고 느껴지지만 이 역시 경험부족이었다. 이전에는 문제를 빨리 수습하는데 주안점을 뒀었다. 숱한 경험으로 쌓인 문제 해결의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수단을 이용해 기억력을 촘촘하게 하기보다는 빨리 해결하는 것을 무기로 삼는 것이 더 현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육아에서는 경험을 통해 문제해결이 어려운 것은 당연했고 수습이 어려운 문제들도 많았다.  

야구배트 가지고 탁구경기에 투입된 느낌이랄까. 숟가락으로 잔치국수 먹기 시합에 출전한 느낌이랄까. 그동안 주로 써왔던 무기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과 지금의 인생,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다름을 느끼고 스스로의 부족을 탓하게 되었다. 누구나 엄마가 처음이라 어렵다지만 나는 그 처음을 시작하기 위한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고민이 없는 것이 인생을 얼마나 단순하고 가볍게 만들어 주었는지. 분명한 장점만큼 단점은 치명적이었다. 결정은 빠르고 고민도 길게 하지 않는다. 좋은 말로 하면 무던하고 나쁜 말로 하면 무신경하달까. 이런 내가 예민하고 고민 많은 아이에게 공감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불가능하게만 느껴졌다. 예민한 엄마에 대한 책은 많이 찾을 수 있었지만 무던한 엄마에 대한 책은 별로 없었다. 그건 아마도 너무 무던해서 문제조차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문제가 없는 문제가 문제였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스스로의 인생을 잘 꾸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로서는 무엇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새로 태어나 세상을 처음 배우는 것처럼 하나하나 알아갔다. 누구나 그렇듯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그러기 위해 애썼다. 그렇지만 투포환 선수가 공을 어디로 던져야 할지도 모르는, 방향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나를 버리고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많은 육아서를 읽으며 좋은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에게는 엄마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고 어떤 반응을 해줘야 하는가 배웠다. 쉽지는 않은 과정이었지만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기쁘고 즐거웠다. 배우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동안의 나를 철저히 묻어버렸지만 엄마가 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속의 나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원래의 나를 자각하기 시작하자 엄마라는 역할이 버겁게 느껴지고 힘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가 많이 커서 엄마의 손이 덜 가고 엄마의 역할이 아이인생에 있어 그저 보조자임을 확실하게 깨닫기 시작하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수없이 탓하며 저 뒤쪽으로 치워놓았던 나를 다시 찾고 싶었다.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사람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가 되기 위한 노력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면 나를 다시 찾는 여정은 그 자리를 맴돌고 뒤로 돌아갔다 오기를 반복하는 과정이었다. 이번 과정의 시작에 기쁨은 아주 적었다. 아이를 탓하고 남편을 탓하고 결혼을 탓할 만큼 힘들고 어려웠다. 남들은 스스로를 잃지도 않고 엄마 역할도 척척 잘 해내는 것은 같은데 난 왜 이렇게 좌충우돌인가. 하지만 결국 그것이 나에 관한 일인 것은 틀림없었다. 모로 가도 서울인데 대체 얼마나 구불구불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육아 이전에는 인생에 대한 성찰 없이 사는 대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버겁게만 느껴졌던 엄마라는 역할이 인생을 다시 재정비하게 해 줄 줄이야. 굽이치며 가면서 인생을 다시 한번 배우고 있다. 그래도 급커브는 사양할게요, 멀미 납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새롭게 배우게 될는지 아이, 신나라.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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