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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Nov 10. 2023

도넛이 무슨 죄가 있나요

책, 놓치지 않을 거예요


“우유크림 하나랑 얼그레이 하나랑 그리고… 그냥 그것만 주세요.” 진열된 도넛들을 열심히 스캔하다가 두 개만 사기로 큰 결심을 한다. 오늘도 잘 버텼다. 자칭타칭 빵순이인 내가 참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도넛. 네 개 채워 상자로 가져갈까, 심히 고민되지만 이 도넛은 산 날이 제일 맛있다. 워워, 욕심은 그만. 처음 크림이 가득 찬 도넛을 먹던 날이 생생하다. “아니 요즘, 도넛에 크림을 넣어서 파는 집이 생겼대.” 빵집투어 메이트인 빵순이 A와 빵순이 B는 이 엄청난 발명에 놀란다. 시장에서 사 먹는 최고의 미식은 꽈배기도넛, 생도넛, 팥도넛이라 생각하는 빵순이 A는 ‘도넛에 크림이? 과연 어울릴까?’ 고개를 갸웃거린다. 핫하다는 새로운 빵을 참을 수는 없다며 과감하게 한 입 베어무는 빵순이 B. 바로 그 순간, 두 빵순이의 커질 대로 커진 두 눈이 마주친다. 별빛이 내린다, 샤라라라랄. “대박, 이거 뭐야? “ 여기 어디야?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린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을 거라는데 도넛이야 말해 뭐 하리. 궁금한 입이 튀긴 빵을 먼저 마중하러 간다. 그리고는 포근포근한 부드러운 크림을 만난다. 얼마나 크림을 채웠는지 입에 안 묻히고 먹기가 힘들다. 어머, 크림이 신선해! 갓 짠 우유로 만든 것 같은 착각에 놓칠 새라 날름, 입 속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그 도넛은 빵순이 A와 B의 최애로 등극한다. 정신없이 먹다 보면 2,3개로는 아쉬울 정도다. 먹고 나면  괜한 죄책감이 밀려오지만 도넛은 죄가 없다.






 맛있을수록 살찌는 음식이라고 한다. 입에 자극적이면 몸에도 자극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맛, 몰랐으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지나치기 힘든 맛이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어느 순간 세상은 자극적인 것들로 가득 차있다. 이미 충분히 자극적인데도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것, 그 보다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그리고 어느 누군가는 그런 사람들의 요구에 열심히 발맞춰 영상을, 이야기를, 뉴스를 만들어 낸다. 요즘은 사람들이 모두 짧은 동영상을 보느라 15분짜리 영상은 끝까지 보지 않는다고 한다. 기승전결을 견뎌내지 못한 채 클라이맥스만 쉬지 않고 접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동영상이지만 빠져들어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 보면 어느새 2-3시간이 후딱 지나있다. 멈추지 않는 트랙 위에서 계속 더 빨리, 더 빨리를 외치면 어떻게 될까.


넋을 놓은 채 공허한 시간 보내기를 한참 했다. 그래도 독서를 좋아하는 편이라 어차피 찾을 자극이라면, 책에서 찾기로 했다. 소설을 주로 읽는데 처음엔 긴 서사를 참기 어려웠는지 단편소설이 편했다. 그러다 청소년소설에 푹 빠지기도 했다. 요즘 청소년소설은 어찌나 재밌는 것이 많은지, 내가 청소년일 적에 이런 소설이 많았다면 책 많이 읽었을 텐데! 어찌 보면 청소년기에 머물러 있는 나의 문해력 때문에 더 쉽게 읽혔는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그렇게 줄기차게 읽다 보니 어느샌가 단편보다 더 긴 호흡의 책을 찾고 있었다.

나 많이 컸네? 출처: 픽사베이


책욕심이 빵욕심 다음으로 큰지라, 새 책도 자주 사고 동네 도서관을 순회하며 빌리기도 많이 빌린다. 읽을 책이 쌓여있지만 독서의 세계로 깊이 빠져드는 것은 쉽지 않다. 손에 닿을 거리에 있는 스마트폰은 매 순간 내 독서생활을 위협한다. 머리에 떠오른 장 볼거리를 당장 장바구니에 담고 싶고, 새로 올라왔을 친구의 사진에 좋아요를 빨리 누르고 싶다. 한정 수량으로 판매한다는 아이템을 놓치고 싶지 않고, 밀려있는 메시지를 어서 확인하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만으로도 사람의 주의력은 흐트러진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저 멀리 다른 방 한쪽으로 치워버린다. 띠링, 이번에는 스마트워치가 살뜰히 날 챙겨준다.


 책도 우리의 감정을 충분히 자극해 준다. 다만 그 자극은 즉각적이지 않다. 결말은 언제 오는가 답답하고, 짜릿한 반전을 거듭해 주기를 바란다. 기나긴 밀당 끝에 책이 내게 건넨 그 자극. 그것은 일시적이지 않았다. 읽는 즉시 왔지만 책을 덮고 한참 후에도 오고, 며칠 뒤 길을 걷다가도 온다. 이 자극적인 세상 속에서 독서는 내게 기다림을 선물하고 쉼을 가져다준다. 습자지 같이 얇은 독서내공이지만 실낱 같은 의지를 붙잡고 오늘도 난 스크린 타임을 걸며 독서의 세계에 발을 내디뎌 본다, 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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