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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Nov 12. 2023

야무진 박작가의 어느 근사한 하루

2028년 11월 11일

그래, 이거지. 공항에 내리자마자 기대했던 공기가 맞아준다. 심호흡을 하며 공기를 양껏 들이마신다.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다 원고를 넘기고 기절하듯 비행시간 내내 잤다. 퇴고가 끝나서 원고를 넘기는 게 아니라 마감이라 어쩔 수 없이 끝낸다는 말을 10번째 책을 쓰는 지금도 실감한다. 비행기 타기 전 패딩을 공항에 맡기고 왔는데 여긴 해가 쨍쨍하다. 봄바람과 가을바람 사이, 그 어딘가의 바람이 분다. 역시 겨울에 오는 하와이가 좋다.

 

하와이에 오면 자주 보는 무지개


밤비행기를 타고 왔지만 짐도 풀지 않고 아침요가를 하러 나갔다. 하와이에서 처음 바닷가 요가를 해봤다. 그 매력에 빠져 올 때마다 호텔을 바꿔가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최신도 아니고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호텔도 아닌 이 호텔에 정착한 이유. 요가선생님도 긍정적 에너지가 넘쳤지만 무엇보다도 액티비티 하는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좋아하는 아사이볼 가게에 걸어갈 수 있다. 수업이 끝나고 운동복을 입은 채 가서 아사이볼을 주문하면,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 기분이 난다. 그걸 자주 느끼고 싶어 한 달 살이도 자주 왔다. 올 때마다 집을 보며 돌아다녔는데 이번에 드디어 집을 사기로 했고 내일이 계약날이다. 10번째 책을 출간할 때 사려던 것은 아닌데 딱 맞아떨어졌다. '오늘은 초코가 듬뿍 들어간 걸로 시켜야지.' 호텔에서 쉬며 테니스수업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위한 샌드위치도 샀다. 문득 이게 꿈인가, 갑자기 하와이에서 아사이볼 포장을 기다리는 내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5년 전엔 파스텔화처럼 모호하고 뿌옇게만 보였던 그림들이 이제는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져있다.


 손에 들고 한 입 가득 떠 넣었다. 꿀맛이 나는 블루베리와 바나나가 부드럽게 으깨지며 그래놀라를 감싼다. 자주 씹히는 초코가 과하게 달지 않아 좋다. 참 뻔한 재료가 들어갔는데 왜 한국에서는 이 맛이 안 날까. 일부러 여기에서 사간 머그에 미국산 블루베리를 넣어 만들어 봤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재료에 하와이 공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남편은 결국 3일 뒤에 오기로 했다. 줄기차게 로또를 사던 남편에게 얼른 돈 벌어서 은퇴하게 해 줄게, 말만 했었는데 막상 정말 은퇴하라고 했더니 취미로 다니겠단다. 이제 원하는 자리에 가서인지, 아무래도 워커홀릭인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예전 같으면 둘이 다녀오라고 했을 텐데 늦게라도 합류해 주니 고맙다. 저번에 일찍 가느라 못 데리고 간 한식집에 가봐야지. 제육볶음 좋아하는 남편이 분명 이거 먹으러 또 오겠다고 할 것 같다.






아이와 테니스를 치러 내려간다. 아이도 나도 실력이 안 느는 것 같아 중간에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래도 꾸준히 한 보람이 있다. 누구와 함께 쳐도 랠리를 할 만한 실력이 됐다. 뭐든 취미로 즐기기까지는 치열하게 노력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테니스장에서 아이와 장난을 치며 몸을 풀고 있는데 어머나.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걸어온다. "세상에~ 최원장 님! 웬일이에요! 휴가 오신 거예요?" 최원장을 여기서 만나다니. 나의 럭키마스코트 1호. 제일 처음 산 건물에서 이비인후과를 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길지만 줄여 말하면 내 건물 1층에 스타벅스가 입점하게 해 주신 은혜로운 분이다. 차분한 것 같지만 에너지가 넘치고 부드러운 것 같지만 그녀만의 생각이 뚜렷한 멋진 분이라 늘 많이 배운다. 예상치 못한 이 먼 곳에서 만나니 더 반갑다. 원장님은 내일모레 출국이라 저녁을 같이하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나, 뒤돌아보게 된다. 책을 내게 된 것도, 건물주가 된 것도, 이렇게 하와이에 내 집을 갖게 된 것도 다 운이 좋았다. 미래 언젠가 이루고픈 꿈이었지만 실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SF소설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렇게 금방 현실이 된 것은 때마다 나타나준 나의 럭키마스코트들 덕분이 제일 크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귀염뽀짝한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지.


드라마 하와이파이브오를 보며 가장 궁금했던 게 갈릭쉬림프였다.



최원장님과 선셋을 보며 간단히 갈릭쉬림프를 먹었다. 선셋 사진을 찍어 후원하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줘야겠다. 20년 동안 고작 1명이었던 후원아동이 5년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감사한 일 천지다. 하와이 공기를 마시니 더 잘 생각나는 것 같다, 하하하. 사람들의 핀잔을 받아가면서까지 하와이 공기 노래를 부르는 이유랄까. 최원장님과는 한국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일찍 헤어졌다. 시차가 있어 잠시 눈을 붙여야 새벽글쓰기 모임 갈 수 있다. 나같이 끈기 없는 사람이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다 동기모임 덕분이다. 새로운 삶의 원천이자 원동력이다. 여기서 충전해서 사는 삶이라는 생각에 전 세계 어디에 있든 전날 무엇을 했든 참여하려고 한다. 이것 말고도 이런저런 소모임들이 있는데 동기모임이 활발한 덕에 2기 모두가 다 성공하신 게 아닐까. 5년 전 썼던 글들이 하나둘씩 성지가 되어 화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 이번 연말 동기모임은 하와이에서 해보자고 제안해 봐야겠다. 저녁에는 다 같이 바닷가에 모여 앉아 얘기하고 맥주 마시고 아침에는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상상만 해도 이미 모인 것처럼 즐겁다. 다들 너무 바빠 몇 분이나 시간이 될지, 그게 관건이다. 얼마 전에 이은경선생님 전세기 계약하셨다고 했는데 쓸 수 있는지 그것부터 여쭤봐야겠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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