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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Nov 15. 2023

당신의 자산은 안녕하신가요?

글쎄요, 제 것은 그렇지 않네요

파란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동화 속 세상이 아니라 내 주식계좌 속 세상이다. 대형주와 소형주의 믹스매치. 패션화보 콘셉트가 아니라 내 주식계좌 속 콘셉트이다. 어제 큰 마음먹고 손절한 주식이 오늘 몇 달 만에 급격한 상향에 날개를 펼친다. 주식은 아니다, 싶어 다시 펀드를 가입한다. 코스트 애버리지 효과(cost average. 일정 금액을 일정기간 동안 꾸준히 투자함으로써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어 수익률을 조절하는 효과. 출처: 다음사전)로 박스권 안에서 움직이는 한국시장 특성상 하락장에서도 수익이 난다는데 몇 달째 마이너스다. 미술전시에 투자하면 관람객 수에 따라 수익이 결정된다고 한다. 오, 이게 아트투자인가? 그림은 못 사지만 전시에는 투자할 수 있지. 투자를 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 전시는 손익분기점을 못 넘었던가 겨우 넘겼던가. 중요한 건 수익은커녕 원금도 다 회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이더스의 손이 따로 있나 싶은 나의 자산들은 대부분 안녕하지 못하다.

바이오주로 대박이 났다더라, 코인으로 돈 벌어 퇴사한다더라, 부동산 투자로 큰돈 벌어 이사한다더라. 수많은 시나리오가 있는데 이 중 어떤 것도 나의 것은 없다. 그냥 입출금통장에 가만히 뒀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명품백 하나를 차라리 샀더라면, 아쉬움에 눈물이 차오른다.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돈 많은 부자가 되면 하고 싶은 게 상당한데 부자가 되는 길은 왜 이리 요원해 보이는지. 돈 많이 벌면? 상상만으로도 얼굴에 미소가 가득이다. 소비요정답게 온라인 장바구니는 가득가득 채워져 있다. 백화점 VVIP는 가뿐히 될 정도다. 부모님께도 매달 용돈을 드리고 차를 바꿔드리고 돈으로 효도해 보고 싶다. 아이와 여유롭게 한 달 살이를 떠나고 싶고 남편에게 별 일 없이 두둑한 돈 봉투를 내밀고 싶다.  




 


은행에서 근무하면서 소위 부자라고 분류되는 많은 자산가 고객들을 보았다. 부모님께 받은 건물 한 채를 밑거름 삼아 훌륭하게 불려낸 건물주 고객님. 찢어지게 가난했는데 본인 손으로 일군 사업이 대박이 나서 무용담이 한가득인 고객님. 열심히 일하면서 번 돈으로 자식들에게 강남 아파트를 마련해 준 전문직 고객님. 대한민국 상위 몇 프로의 부자들이 모여 있다는 동네에서도 일해보고 많은 개발과 지원이 시급해 보이는 동네에서도 일했다. 비율과 규모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동네에나 부자는 있다. 어딜 가도 보이는 부자들이 부러웠다. 나도 저 정도 되면 매일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정도면 여유롭게 운동하고 쇼핑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부자고객들의 노하우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미 부자 된 사람들이니까 부자로 가는 길을 알고 있을 거야. 나만의 부자사람책을 만들어보자.' 각자 돈과 소비에 있어 신념과 원칙이 있는 것 같았다. 공통점을 찾는 듯했지만 이야기를 모으면 모을수록 나의 시크릿 부자그래프는 수렴하지 않고 점점 발산해 갔다. 백 명이면 백 가지 방법으로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난 전문직이니 아니니 패스. 당장 창업을 할 수 없으니 패스. 부모님께 상속받지 않았으니 패스. 나에게도 수백 가지 핑계가 있었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것 역시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모두가 부자는 맞지만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매달 말일 통장에 들어오는 임대료를 확인하러 오시는 고객님은 건물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훌륭한 인품을 본받고 싶었던 유명 회사 대표고객님은 뉴스에 보도되는 큰 사건을 겪었다. 부모 모두가 전문직인데 자식이 말을 안 들어 대학 진학이 어려울 것 같다며 한숨 쉬는 고객님도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이 돈이 없었을 때와 돈이 있었을 때를 비교하자면 조금 더 행복해졌을 수도 있고 돈이 없는 사람이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자가 되는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가보지 않아서 사실 뭐가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출처: 픽사베이

 

부자가 되고 싶다는 나의 바람 속에는 부자가 되면 행복해지겠지,라는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 '부자가 되면'과 '행복해지겠지'는 굉장히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 사실을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은연중에 '나는 아니야, 난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당장 백만 원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분명 행복할 것 같다. 정말 그럴까? 하늘에서 떨어진 후, 이거 어떻게 쓰지? 잠깐 고민하는 과정은 행복할 수 있다. 아니다. 이 돈이 왜 떨어졌지? 써도 되나? 떨어지는 순간부터 고뇌에 빠질 수 있다. '백만 원이 생긴다면?' 하고 상상하는 지금만 행복한 것 같기도 하다.


과정이 행복해야 한다는 故신해철 님의 영상을 얼마 전 보게 되었다. 결과는 짧은 시간 지속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긴 과정의 시간이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 모든 것을 고통스럽게 참을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을 행복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고 지속적으로 행복하려면 부자가 되는 과정이 행복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그 과정이 치열해야 혹은 여유로워야 행복할 것이고, 어떤 이는 그 과정이 길어야 혹은 짧아야 행복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일까, 고민이 필요할 때다. 큰 부를 이루면 당연히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가보니 행복이 온데간데없으면 어쩌나. '부자가 됐는데 행복해졌다!' 이 길을 찾아야겠다. 이 산이 아닌게벼, 즈 짝으로 가자!  

괜찮다, 다시 가면 되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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