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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Nov 07. 2023

아이학원은 일시불, 엄마학원은 할부

나에게 투자하는 것이 왜 어려울까

새로 등록한 아이 학원비가 예상보다 큰 금액이다. '이번 달은 날씨가 좋다고 너무 놀러 다녔나. 카드값이 엄청나네. 어쩌지. 할부로 해볼까?' 소비요정답게 이번 달도 열심히 충동적으로 써재꼈다. 분기별로 내는 학원비지만 할부는 용기 내어 6개월로 해본다. 매달 내는 학원비를 할부로 하다니?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지만 그 할부는 점점 눈덩이가 되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게 굴러왔다. 할부의 강력함을 몸소 깨달은 이후에는 손이 떨려와도 당연히 일시불이다.


그런데 내 운동을, 취미를 결제하자니 다시 할부가 하고 싶다.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또? 왜 그럴까? 뭔가를 배우고 싶어지면 나도 모르게 좀 더 저렴한 방법은 없을까 찾고 있다. 비슷한 금액이어도 내 학원비는 할부로 하고 싶다. 부담을 줄이고 줄여 쥐똥만 하게 만들고 싶다. 부담의 근원을 찾아볼까. 아무래도 생활비 항목에 엄마의 자기 계발비가 없어서인 것 같다. 엄마도 당당하게 스스로를 위해 돈 쓸 권리가 있다고! 왠지 억울하다. 가사노동의 정의까지 파고들 의향이 있다. 실제로 23년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무급가사노동의 가치는 490조 9천억 원(2019년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총생산(GDP) 대비 25.5% 수준이라고 한다. 무급가사노동의 가치에 비하면 내 학원비는 티끌 수준인걸? 유난스러운 이유까지 대어 보지만 할부로 하고 싶은 마음은 물 위의 기름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육아서와 엄마 자기 계발서의 중간쯤 되는 책들을 열심히 읽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가 커가고 경력단절기간이 길어지면서 스스로도 자기 계발에 대한 필요를 절실히 느끼던 차였다. 진리는 하나인 양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하고 행복하려면 스스로 성장을 해야 하고 성장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 그래, 자신에 대한 투자가 진정한 투자라 했지. 무언가 배워야겠다! 사실 뭔가 배우는 것은 나의 오랜 취미이자 특기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내게 묻는다. “요즘은 뭐 배워?” 취미도 배우고 운동도 배우고 뭐든 배운다. 책에 따르면 좋아하는 것 중에 잘하는 것을 찾고, 그것에 몰입하라고 하던데. 잘하는 것을 찾겠다는 일념하에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몰입'해본다. 그런데 매번 몇 달 못가 그만둔다. 다른 것을 배우러 간다. 망설임 없이 용감하게 시작하고 누구보다 과감하게, 미련 없이 끝낸다. 그러니 잘하는 것을 찾기는커녕 맛보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내 학원비가 아까웠던 것인가? 그렇다, 난 꾸준함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얘는 왜 이렇게 늘 하다 말지?’ 아이에게 늘 불만이었던 그 꾸준함. 아뿔싸, 유전이었나 보다.

빙고 채우기를 하듯 그저 이것저것 배운다. 출처: 픽사베이



흐지부지 되는 것을 막아보고자 뭐든 결과가 나올 만한 적당해 보이는 것들을 배우기도 했다. 한국어능력시험을 보고 필요점수를 채우고 토익점수도 갱신했다. 한국사 1급 자격증도 땄다. 소소하지만 작은 목표를 이뤘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당장 취직할 예정도 아닌데, 도통 써먹을 데가 없었다. 적당한 투자는 그저 그런 뻔한 결과를 불러왔지만 장기적으로 꾸준한 노력을 쏟아야 하는 난이도 높은 도전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동안 가장 꾸준하게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나, 생각해 본다. 독서모임도, 엄마표수학도 n년째 지속하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치트키였나 보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격언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상대가 아는 사람이든 익명의 누군가든 상관없다. 상대와 한 약속을 지키고 상대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다. 그것이 내가 무언가 꾸준히 하고 싶은 이유였다. 꾸준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꾸준할 수 있는 방식이 따로 있었을 뿐이었다. '함께하는’ 1만 시간의 법칙, ‘약속하면 이뤄지는’ 성공의 법칙. ‘서로 기대면’ 성장이 쉬워진다. 기존의 성공공식 대신 찾아낸 나만의 방식. 내게 없는 끈기를 메워줄 ‘누군가’를 찾아 떠나야겠다. 하마터면 끈기 없는 성향 물려준 엄마인가 싶어 울컥 할뻔했다.

1년 치를 12개월 할부로 하는 것도 안될까요? 무이자로 부탁합니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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