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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Dec 01. 2023

어머니, 방학특강은 마감입니다.


"네?? 벌써 마감이 되었어요?"

"네 어머니. 일단 대기명단에 올리시면 저희가 취소 자리가 나던지 혹은 반을 하나 추가로 개설하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싼 돈 주고 등록해야 하는 특강인데 대기명단에 올려준다니 진정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이 맞는가, 어리둥절하다. 이제 4학년에 올라갈 때가 되니 주변은 고학년용 학원을 찾느라 바빠지기 시작한다. 학년 올라갈수록 영어에 할당할 시간이 없을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에 슬쩍 학원을 알아본다. 전화해 보니 온라인으로 레벨테스트를 예약하고 오란다. 다행히 접수가 어렵진 않다. 테스트 전날에는 설문조사를 하라고 문자가 왔고 테스트 전에 와서 어떤 테스트를 봐야 하는지 사전 테스트를 봐야 한다고 한다. 이거 정말 테스트 지옥이구나. 클리어해야 하는 미션이 너무 빠르게 끊임없이 주어진다. 다들 이렇게 어렵게 학원에 입학하는 건가? 테스트도 보기 전인데 두려움과 회의감이 다정하게 손잡고 내 앞으로 온다.   


어머니, 저희가 얼마나 훌륭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게요. 출차: 픽사베이



이런, 설명을 듣다 보니 귀가 덤보처럼 커져서는 한 번만 더 팔랑이면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아, 나 이래서 학원설명회에도 안 왔었구나.' 촘촘한 커리큘럼과 자신감 가득한 원장선생님의 설명회를 듣다 보니 이 학원에 나도 다니고 싶어 진다. 학원에 등록만 하면 자동으로 저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 같다. 공항에 있는 워킹 에스컬레이터처럼 가만히 있어도 곧 탑승장에 도착하고 비행기를 타고 영어정복섬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아이는 영어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 엊그제 도서관에 빌려온 영어책을 읽어보라고 하니 기초적인 단어도 못 읽던 게 떠오른다. 그래, 이제 학원에 다닐 때가 된 것 같긴 하다. 방학특강으로 일단 적응 좀 해보라고 해야겠다. 설명회가 끝에 다다를수록 나의 마음은 확신으로 가득 찬다. 그동안 학원을 안 보냈던 것이 마치 누가 억지로 막아서 다닐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 당장 등록하고 싶어 져서 애가 탄다. 그렇지만 바로 등록을 할 수가 없다. 펼쳐놓은 교재도 살펴보라고 하고 기다렸다가 선생님과 레벨테스트 결과로 개별상담을 하라고 한다. 러시아전통인형 마트로시카를 열고 열고 또 열었는데 아직도 열게 남아있던 것처럼 놀랍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겨우 상담을 끝내고 방학특강에 등록하려는 의사를 전달한다.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시던 선생님은 지금 아이가 등록할 수 있는 반은 마감이라고 한다. 세상에나, 방학이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벌써 마감이라니. 내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그래, 이 세계는 초스피드 전력질주 세계라고 했었지.

출발 준비 되었나요? 출처: 픽사베이


약속시간에 늦어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차선을 바꾸며 운전했던 날이 생각난다. 고약한 취미인가 싶지만 추월하며 옆차 번호판을 외워둔다. 요리조리 열심히 달려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닌가 확인해 보고 싶어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호등에 걸려 옆을 보니 아까 추월했던 그 차가 와있었다. 다른 길로 빠져야 하는데 교통량이 많아 영락없이 이 쪽 차선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직진 차선으로 아까 추월한 그 차가 유유히 지나간다.

빨리 달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속도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실감한다. 모든 사람이 끝이 같은 하나의 도로를 달리고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니 목적지가 다르다. 저 차가 이번 신호에 건너고 나는 못 하면 목적지에 늦어서 못 갈 것만 같은 불안감에 속도를 슬쩍 올려본다. 하지만 옆에서 달리는 저 차와 나의 목적지는 다르다. 각자 갈 길을 향해 가고 있는 중 잠시 같이 가고 있는 것뿐이다. 알면서도 같은 도로에 나란히 있을 때면 옆에서 휙휙 지나가는 차들이 신경 쓰인다.






아이와 함께 그 속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속도가 빠르든 늦든 그 아이의 속도를 인정해 주고 존중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길 소망한다. 심지어 멈췄다가든 다시 돌아가든 아이의 뒤에서 늘 든든하게 지켜봐 줄 수 있는 부모이길 바란다. 하지만 내게 그런 큰 배포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누군가 살짝이라도 치고 지나가면 어느 곳에도 지지되어 있지 않은 듯 가볍기 그지없는 아이와 함께 그 속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발걸음이 빙그르르 돌아가고 옆에서 바람이라도 부칠 새면 종잇장처럼 얇아진 내 귀가 미풍에도 수없이 펄럭인다. 나는 심하게 흔들릴지언정 아이는 무풍지대에 있는 것처럼 지켜주고 싶은데.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로 결심한다. 무소의 뿔처럼 굳건하게 갈 수는 없지만 갈지(之) 자로 가면 또 어떤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지를 명확하게 하고 그걸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는지를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매 순간 흔들리는 미숙함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소를 잃어도 늦게나마 외양간을 고쳐보는 나의 시행착오를 알리기로 한다. 그것이 엄마가 인생을 소중히 대하는 법이라는 것을 슬그머니 내비쳐야지. 아이의 멋진 롤모델이 고픈 완벽한 이상은 저 멀리 놓아버리고 그저 배움 앞에 겸손하고 인생에 진심인 태도를 드러내기로 마음먹는다. 미안하다, 아가야. 그다음은 네 몫이야. 엄마가 크게 한 몫 남겨놓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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