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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Dec 06. 2023

두통이여, 이제는 안녕

어느 날 찾아온 두통과 이별을 고하며

시댁 집들이를 한 다음 날부터였다. 처음 겪어보는 이명과 두통에 정신을 못 차렸다. 집들이에서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두통에 내 잘못은 없다고 스스로를 두둔하듯, 집들이 다음 날부터였다고 기억을 해 둔 것뿐. 하루아침에 이 어마어마한 녀석은 어디서 왔을까, 근황을 짚어보았다. 이때만 해도 그 두통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괴로울지는 전혀 몰랐다.  


연고 없는 동네로 이사와 오피스텔에 거주하며 인테리어를 시작했고 매일 아침 입학한 아이를 데려다주고 인테리어 중인 집으로 출근을 했다. 참견해야 신경 써준다기에 인테리어 실장님께, 현장소장님께, 목공팀에, 도배사장님께 지겹도록 얼굴도장을 찍어댔다. 아이는 아이대로 아는 친구 하나 없는 학교에 적응하느라 힘이 들었는지 매일 울며 등교했다. 결혼한 지 10년째였고 엄마는 8년 차였다. 두통의 원인으로 지목하기에는 남들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은 일상이었다. 이 정도 어렵고 힘든 일이야 누구나 다 있고 늘 있지 싶었다.






약을 먹어도 가라앉지 않고 밤에 자다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깼다. 누워있으면 더 심해지는 두통에 소파에 앉은 채로 자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마주하며 눈을 떴다.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괄사로 미친 듯이 두피를 긁어댔고 할 수 있는 건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심호흡을 하는 것뿐이라 모든 약속을 취소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아이 학원을 데려다주다가 도 오는 길에는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마치 산통 같았다. 어떻게 해도 고통이 사그라들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산통에 신랑 머리를 부여잡듯 부엌에 주저앉아 식탁 다리를 부여잡으며 끙끙 앓았고 신음을 내뱉고 또 심호흡을 했다. 신경과에 갔고 이비인후과에 갔다. 한의원에서는 추나치료를 권했고 재활의학과에는 도수치료를 권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하라는 모든 것을 했지만 갑자기 찾아온 두통은 가실 줄을 몰랐다. 가는 곳마다 두통의 원인은 달라졌다. 시상하부가 예민해 외부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뇌혈류량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기도 했다. 어깨와 등이 뭉쳐서 두통이 온다고 하기도 하고 비타민D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하기도 했다. 뇌압이 높다고 했고 철분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럴 수가. 그동안 자잘한 편두통과 함께해 온 세월이 길었지만 병원을 가본 적은 없었다. 병원에 가면 바로 명쾌한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곧 이전 같은 하루를 되찾을 것이란 기대가 얼마나 가소로운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다행인지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두통이 조금 사그러 들긴 했지만 아예 가시진 않았고 다음 날이면 또 아파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고 또 상비약을 먹어야 했다. 그나마 약을 먹으면 나아지니 외출할 때 약이 없으면 불안해서 어디 가지 못하는 정도가 되었다. 두통의 정도와 빈도를 기록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어플을 사용했는데 하루 만이라도 깨끗한 날이 있었음 했지만 그건 유니콘을 만나듯 환상 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두통이 있으시다면 혼자 앓지 말고 전문의를 찾아가세요. 출처:픽사베이



그렇게 2년 가까이를 일상에서 멀어진 채 아프면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원인을 못 찾는 것이었다. 뭐가 잘못됐는지 혹은 원인인지 알면 그걸 고칠 텐데, 바꿀 텐데. 그러면 두통도 함께 없어질 것 같은데 그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두통의 원인은 수만 가지라고 한다. 그중에 어떤 것이 나에게 두통을 유발하는지 찾고 그에 맞는 약을 찾아가는 짧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두통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어디에서도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고 애가 타는 내가 우물을 파기로 했다.(우물만 파면 물을 마실 수 있나?) 하루아침에 두통이 생긴 것이 아니라면 그동안 삶아온 방식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논문이라도 쓸 것처럼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파고들었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내 생각을 했다.  


싫은 소리를 잘 못한다. 우아하게 웃으며 팩폭을 날리고 싶은데 울먹이고 분노하며 쏘아붙이고 있는 모습에 입을 꾹 닫는다. 잔소리도 지적도 잘 못한다. '바뀌지도 않는데 입만 아프지.' 속으로 욕하며 이해하고 넘어가는 척한다. 쿨한 척하며 스트레스받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신경 쓰지 말라한다. 마음 넓은 아내, 허용적인 엄마, 속 깊은 딸, 긍정적인 친구. 좋은 역할은 다 내가 하고 싶었다. 스스로를 속이며 무리하며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트레스를 차곡차곡 쌓으며 속을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목 끝까지 차올라서 버티다 못해 몸이 비명을 질러댄 것 같았다. ‘제발 그만하라고!!!’ 그래도 빨리 알려줘서 참 고맙다. 지나고 나니 더 큰 병이 아니었음을 감사한다. 지나치지 않고 멈춰갈 수 있는 아주 적당한 수준이었다며 우스갯소리도 한다. 이제는 가족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친구들에게 거절을 한다. 울먹이며 의견을 말하고 성질을 내며 큰 소리도 낸다. 부끄럽고 창피할 때도 많지만 난 그렇게 멋진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한다. 추천받은 한의원의 약이 잘 맞았던지, 변한 나를 몸이 받아준 것인지 두통은 올 때 그랬던 것처럼 갈 때도 급하게 가버렸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 확실한 것인지 이제는 언제 어떻게 아팠던가 한참 생각해봐야 하는 정도다. 망각하는 중에 감사하게도 두통의 경험만은 확실히 남아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는 것은 잊지 않고 있다. 남편은 잔소리가 늘은 나를 보며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고 만나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 매 순간 못난 나를 인증하며 살고 있는데 감사는 늘었고 삶은 여유로워졌다.

처방이 바뀌거나 병원이 바뀌면서 약이 쌓여갔지만, 이제는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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