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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Dec 13. 2023

술 권하는 사회

술이 잔뜩 취해 전화를 한 이후로 한참 동안 연락이 없다. 보내놓은 카톡은 확인도 안 했다. 팀회식이 있는 날이면 비슷한 수순을 밟기에 이제 좀 익숙해졌다. 택시 탄다고 혹은 택시 탔다고 연락 올 때가 지났는데 연락이 없다. 하루가 바뀔 즈음엔 예의상(?) 전화를 해본다.

“여보세요, 내가 바로 다시 전화할게. “ 목소리가 다시 멀쩡해졌네, 높은 분이라도 귀가시켜 드리는 중인가. 그러고는 또 1시간 동안 감감무소식이다. 내일 나 새벽기상해야 하는데, 잠시 누워본다. 잠이 올리가 있나. 눈을 떠 핸드폰을 확인하니 2시가 넘었다. 오늘 좀 많이 늦네. 다시 전화를 걸어보지만 받지 않는다. 슬슬 느껴진다, 단전에서 뜨거운 것이 준비 중이다. 혹시 또 택시에서 잠든 거 아냐? 안 되겠다, 전화공격을 시작한다. 공격개시!

적당히 마시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거늘. 출처: 픽사베이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잠시 후…” 5통째 안 받으니 본격적으로 화가 나기 시작한다. '아니, 제정신이야 뭐야. 정팀장이랑 술을 마시면 매번 이러냐고!!!' 10통쯤 하다 보니 아침에 포털에서 봤던 무시무시한 범죄기사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길거리에서 잠들어 범죄의 표적이 된 것은 아닌지, 비틀비틀 택시를 잡다 퍽치기를 당한 것은 아닌지. 이제 점점 단거리 육상선수급으로 불안감에 속도가 붙는다. ‘기다려볼까? 문 과장한테 전화를 해볼까? 아냐, 너무 늦었잖아.’ 겨우 10분 지났는데 급작스러운 전개에 심장이 바운스대기 시작한다. '아래 내려가볼까? 경찰서에서 전화 오는 건 아니겠지?' 들어오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혼자 협박을 했다가 무사귀가를 바라는 기도를 했다가 감정이 출렁이고 마음에 폭풍우가 몰아친다.






연예인들이 술을 마시며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이 요즘 많이 보인다. 술을 마시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콘셉트인 것 같다. 사람들은 취하면 평소 하지 않던 이야기도 하게 되고 좀 더 솔직하게 자기 의견도 펼친다. 술이 술술 들어가니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공식적인 자리 혹은 TV 프로그램에서만 연예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술을 마시며 하는 이야기는 뭔가 새롭다. 저게 바로 취중진담인가. 사실 취중진담이라는 것을 좀 이상하게 여긴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할 말이면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취해야 진담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알코올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 아닌가? 알코올의 힘까지 빌려가며 용기 내어할 얘기라면 맨 정신이라면 이성이 단단히 붙들어 맬 그런 이야기인 것 아닌가? 다음날 제정신에 생각했을 때 이불킥 할 일이 태반 아닐까. 이런 비딱한 생각도 잠시, 방송을 보다 보면 저 메뉴를 술 없이 먹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저런 비율의 술은 대체 무슨 맛이길래 저리도 신이 나서 마시는지 내일 아침부터 24시간 삼겹살집이라도 가봐야 하나 검색해 보느라 손가락이 분주해진다. 나도 모르게 새우깡과 맥주를 꺼내 오고 있다. 말 그대로 술을 부르는 방송이다. 


정팀장이 남편에게 권하는 딱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는 동안 방송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평소보다 더 다정한 태도가 되어 술을 권한다. 누가 더 고된지 경쟁하느라 바쁜 회사동기들이 오늘은 다 잊고 즐기자며 술을 권하고 TV광고에서는 예쁜 그녀와 멋진 그가 같이 마시자며 술을 권한다. 여기저기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술 권하는 사회라 그럴까? 술에 대한 대가는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이가 없다. 

흡연도 음주도 개인건강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같은데 왜 담배에만 끔찍한 경고이미지가 붙어있을까? 흡연을 하다 화가 나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흡연으로 인한 심신 미약으로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도 들어보지 못했다. 음주가 끼치는 사회적 해악은 더 큰 게 분명한데, 음주는 왜 더 너그럽게 보는 걸까?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고 누군가의 가정을 파괴하는 음주운전 사고 소식은 사람들은 분노하게 만든다. 사회전체적으로 이슈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강력한 처벌에 뜻을 모으지만 사고 소식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음주운전 재범률은 44%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보인다고 한다. 재범률이 높다는 것은 음주로 인한 처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범이 쉽게 가능하다는 것은 처벌기한이 짧고 음주로 인한 죄 자체를 가벼이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음주를 권하는 사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출처: 픽사베이


너는 두 잔, 너는 두 병. 개인의 주량을 측정해 적정한 선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그 적정한 선을 개인이 지키려면 사회적으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줘야 한다. 음주로 인한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그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벌 강화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 덕에 직접적인 방지대책도 준비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해외에는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가 있다고 한다. 차에 부착하는 장치로 운전자가 운전 전에 알코올 농도를 측정해야지만 시동이 걸리는 것인데 우리나라도 2024년 10월부터 해당 장치 부착이 시행될 예정이다. 도로교통법 일부가 개정되어 '음주운전 방지장치 부착 조건부 운전면허'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상습 음주운전면허취소자가 차에 음주운전 방지장치를 의무적으로 부착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방지장치 설치비용으로 인해 논란이 다소 있는 듯 하지만 먼저 도입한 해외에서도 음주운전 감소효과가 있다고 하니 비극적 소식이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12월은 통계적으로 음주운전이 가장 많은 달이라고 한다. 연말에 즐거운 모임이 많으니 술자리 역시 많기 때문일 것이다. 즐거운 모임의 끝이 뾰족한 창이 되어 타인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정팀장님, 술 좀 그만 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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