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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Nov 18. 2023

붕어빵 좋아하세요?

겨울한정판의 매력

김이 폴폴 나는 붕어의 입에 조심스레 내 입을 갖다 댄다. 음, 살짝 식었네. 한 입 크게 베어무니 아직 식지 않은 뜨거운 팥이 넘칠 듯이 날 반겨준다. 그렇지만 어서 먹고 하나 더 먹어야 하니 호호, 불며 먹는 속도를 올려본다. 죽은 빵을 살린다는 토스트기에 식은 붕어빵을 돌려 먹어도 꽤 맛있긴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갓 받은 붕어빵이 제일이다. 입천장을 데일 듯 말듯한 팥소와 살아있는 꼬리의 바삭함이 다르기 때문이다. 찬 바람과 함께 붕어빵의 계절이 돌아왔다.


갓 받은 싱싱한 나의 붕어빵


붕어빵을 좋아하는 편이다. 작년엔 붕어빵 앱을 보며 노점을 찾아갔었는데 올해는 왠지 붕어빵 장사가 늘어난 듯, 더 자주 눈에 띈다. 여기저기서 붕어빵을 사 먹는데 그 이유는 만드시는 분에 따라 붕어빵의 맛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반죽과 팥 비율이 다르고 지느러미와 꼬리의 바삭함이 다르다. 오늘 사 먹은 곳은 3마리 2천 원이다. 비싸긴 하지만 많이 오른 요즘 붕어빵 시세를 감안하면 중간정도 되는 것 같다. 처음 먹어본 곳이었는데 머리를 먹고 나니 살짝 아쉽다. 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반죽이 약간 질다.(안 익은 것은 아니겠지) 지느러미는 꽤 바삭했지만 꼬리는 더 바삭해도 좋을 것 같다. 맛에 정답은 없지만 취향은 있다. 여기, 나의 취향은 아니다.  


붕어빵 앱까지 있다는 것은 붕어빵을 좋아하고 붕어빵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붕어빵의 매력은 무엇일까. 밀가루와 팥의 조화가 일품인가? 추운 겨울에 속을 뜨끈하게 해 주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겨울에만 먹을 수 있다는 것, 편의점에서도 자판기에서도 파는 콜라처럼 먹고 싶을 때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꽤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나 역시 붕어빵 노점을 볼 때마다 사 먹는 이유는 지금 안사면 집까지 가는 길에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다. 이 계절이 가고 나면 한동안은 먹지 못한다는 사실도 늘 붕어빵 노점에서 나를 서성이게 한다. 물론 요즘에는 사시사철 나오는 패스츄리 붕어빵가게도 있고 냉동식품 중에 미니붕어빵도 있지만 길거리에서 파는 그 붕어빵과는 묘하게 다르게 느껴진다. 만약 붕어빵을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다면 붕어빵 노점을 마주칠 때마다 사 먹게 될까? 그때 붕어빵을 사 먹는 횟수와 겨울에만 한정해서 사 먹는 횟수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비슷하거나 심지어는 겨울에만 먹을 수 있던 때가 더 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한정판 아이템이라 지나치지 못하는 붕어빵인 것이다.  






얼마 전 갔던 도넛집에도 평소보다 훨씬 긴 대기줄이 있어 의아해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애니메이션 굿즈를 콜라보해서 판매하고 있었는데 1인당 구매수량이 지정되어 있었고, 그마저도 판매기한이 며칠 안되었다. 한정판 굿즈였던 것이다. 일명 레어템. 처음 보는 애니메이션이었는데도 줄을 서볼까 잠시 고민했다. 한정판 앞에서는 유독 정신을 못 차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그 상품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욕망을 자극하는지. 이 브랜드에서 한정판을 사고 나니, 저 브랜드에서 한정판이 나온다. 한정판의 가짓수는 한정되어 있지 않다. 세상 모든 한정판을 가질 수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럴 수 없는데서 욕망이 꿈틀대고 그렇기 때문에 한정판의 가치도 올라가는 것이겠지. 자, 한정판을 운 좋게 손에 넣었다고 해보자. 이번 한정판이 다음 한정판보다 낫다는 확신을 할 수 있을까? 천만다행으로 이번에 구입한 것이 훨씬 나은 것 같다고 느낀다 해도, 그 마음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사실 가만 생각해 보면 모든 물건은 한정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새우깡의 경우는 아니다. 과연 새우깡처럼 긴 세월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물건이 몇 개나 될까. 사람들의 취향과 기호는 바뀌기 마련이고 유행은 금세 지나간다. 내가 오늘 산 한정판이 언제 옷장 깊숙한 곳에서 잊혀갈지 모를 일이다. 오래도록 나를 만족시킬 한정판은 어디에 있을까?


고민 끝에 내가 찾아낸 한정판의 최고봉은 지금 이 순간이다. 지난 10분은 내 인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10분이다. 내 아이의 오늘이 지나면 어제의 그 아이는 다시 볼 수 없다. 이 한정판이야말로 절대 놓치면 안 되는 품목이 아닌가. 왜 이 귀한 한정판을 마치 수도꼭지를 틀면 언제나 나오는 물처럼 대하고 있는가. 내 인생의 지금을 오픈런해서 힘들게 줄 서 기다려 겨우 차례가 되어 받은 것이라 생각해 보려 한다. 전 세계 단 하나 출시된 초레어템을 가진 것처럼 소중히 대해 보기로 한다. 그렇게 모은 한정판들은 매일 꺼내보고 싶고 언제나 맨 앞에 진열하고 싶은 것들이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그건 그렇고, 내일은 붕어빵을 먹으러 저쪽 사거리로 가봐야겠다.


그래, 그 아저씨 팥붕어빵이 참 맛있었어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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