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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Dec 16. 2023

포카, 그게 뭐라고

"엄마, 나도 포카 사주세요."

"포카? 포카가 뭐야?"

"포토카드요."

"오, 포토카드. 그래, 엄마가 한 번 찾아볼게."


아이브 포카. 나의 친구 포털 검색창에 입력해 본다. 아, 뭐가 많이 있네? 내일 배송 오는 걸로 시켜본다. 올해 3학년이 된 아이는 집에 와서 종종 포카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거래를 한다고 해서 놀라 거래? 하고 물어보니 서로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교환하는 것을 거래라고 하길래, 요즘 놀이문화인가 했는데 본인도 거기에 참여를 하고 싶었나 보다. 다음 날 총알처럼 배송이 와서 아이는 신이 나서 포카를 가지고 학교에 갔다. 친구들과 교환하며 놀았다고 얘기를 하는데, 가만 들어보니 정품 포카 한 장은 일반 포카 몇 장을 주고 교환을 해야 한다며 정품 포카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정품포카?' 그런 게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또 입력한다. '정품 포카, 정품 포카 사는 법' 아무리 찾아보아도 정품포카를 살 수 있는 곳이 없다. 아, 이건 소속사에서 한정판매 같이 파는 건가? 찾아보아도 알 수가 없으니 그러고는 검색창을 닫았다. 앨범을 사면 거기에 겨우 2-3장 정품 포토카드가 들어있다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리고 그 포토카드가 랜덤으로 들어있어서 포토카드를 또 얻으려고 앨범을 추가 구매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요즘 시디를 누가 듣나, 앨범판매를 저런 식으로 하는가,

갖고 싶게 생기긴 했네. 엄마 때는 직찍을 샀는데 말야.


"산타할아버지가 앨포 100장 주셨으면 좋겠다."

"앨포가 뭐야? 앨범포카?

이제 엄마도 좀 짬이 생겨, 추측이 가능해졌다. 역시 애들이 포카 얻으려고 앨범 사는 것이 확실하구나. 그 가수를 좋아하니 시디를 안 들어도 앨범 소장 할 수 있지, 소싯적 덕질 좀 했던 엄마라 이해가 살짝 되었다.  앨범 판매량 높인다며 앨범을 여러 개 사서 하나는 뜯어 듣고, 하나는 비닐을 뜯지 않고 소장하고, 심지어 용돈이 넉넉한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들으라고 주기도 했던 시절이 있긴 했지만. 포토카드 얻으려고 앨범을 또 사는 것까지는 좀 심한 것 아니냐 생각한다. 랜덤으로 들어있는 포카가 갖고 싶어서 앨범을 또 사다니. 그럼 포카의 가격은 대체 얼마인가. 소싯적에 덕질 좀 했던 엄마라 아이의 아이돌 사랑을 이해해 줘야지 했는데, 포카를 접하고 나니 요즘 덕질, 과거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과거에도 끼워 팔기 식은 흔했다. 앨범을 사고 잡지를 사야 브로마이드를 얻을 수 있고, 모델을 하고 있는 브랜드에서 물건을 사면 엽서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듣지도 않는, 아니 들을 수 없는 앨범을 포카를 위해 사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아닌가. 포카를 사니 덤으로 앨범을 끼워주는 느낌이다.






아무리 같은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그때와 다른 상황이 펼쳐지면 이해의 폭은 급격히 줄어들기 마련이다. 듣는 사람 역시 같은 경험을 이야기해도 거기에 시간이 입혀지면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라때는 말이야.' 하는 순간 '꼰대'가 되어버리는 이유다. '엄마 어렸을 때는 수박바가 50원이었어.'라고 말하려면 그때는 공책은 얼마였고, 아버지 월급은 얼마였고, 아파트 가격은 얼마였으며, 국가 GDP는 얼마였단다, 정도까지는 말해야 '수박바 50원'이 가지는 가치가 얼마였는지 느껴지지 않을까. 물가상승률만큼 나의 이해도와 공감 수준은 매해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경험에 비추어 지금 상황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그 마음을 알아줄 수는 없을까. '그래, 나도 그랬었는데 너 지금 힘들겠구나.' 여기까지만 하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나도 다 겪어봐서 아는데 지금 그건 잘못된 거야. 이렇게 해야지.' 상황이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지도 않을뿐더러 모든 상황에서 충고를 하고 길을 열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심지어 그 길이 바른 길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편협한 조언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다. 내가 해봤고, 성공했으니 나의 길이 언제나 바른 길이고 누구에게나 맞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열하게 실감해 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김애란『잊기 좋은 이름』중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머릿속에서 벌써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지, 했다면 말하고 있는 이가 원한 듣기에서는 벗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고민을 이야기하다 보면 스스로 길이 보이곤 한다. 같은 시대를 각자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비슷한 문제에 다들 봉착하곤 한다. 하지만 그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 다르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각자의 소신에 따라 해답을 찾는다.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길을 내주는 것이 아니고 길을 찾도록 응원을 보태는 것이 아닐까. 나의 경험은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나의 방식은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신나게 포카를 가지고 놀고 신곡 앨범을 사달라는 딸에게 엄마의 덕후시절 이야기를 해주며 요즘은 문제가 많다고 할 게 아니고, 그냥 질문을 하는 편이 낫겠지? "그래서 어떤 멤버가 좋다고?"

포카를 한 장만 더 끼워주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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